더불어민주당의 김종인 비상대책위원회 대표의 당무 거부 사태는 어제 문재인 전 대표의 설득으로 일단 봉합됐다. “나를 욕심 많은 노인네처럼 만들었다”며 사퇴를 강력하게 시사했던 김 대표는 어제 비대위 회의에 참석해 “거취를 더 고민해 보겠다”고 한발 물러섰다. 하지만 자신을 비례대표에 넣지 말라고 말함으로써 실제로 사퇴를 할지, 친노(친노무현) 세력의 백기 투항을 받아 낼지는 두고 봐야 하게 생겼다.
김 대표를 몰아낼 듯 김 대표의 비례대표 선정을 비난했던 더민주당 사람들이 문 전 대표의 출동과 함께 돌변한 사실은 의미심장하다. 어제 오전 문 전 대표는 창원 성산 지역구에서 더민주당 허성무, 정의당 노회찬 후보의 단일화 기자회견에 참석하고 있었다. 김 대표가 “정체성이 안 맞는다”며 반대했던 정의당과의 연대에 앞장선 것이다. 그는 ‘김 대표 사태’를 듣고 비행기를 타고 날아와 서울 자택을 찾았고, 이후 김 대표를 비대위에 참석시키는 역할을 해냄으로써 누가 당의 실질적 주인인지를 만방에 드러냈다.
문 전 대표가 김 대표 면담 후 기자들에게 “(김 대표가) 이번 총선을 경제민주화라는 화두로 치르는 데 간판 역할을 해야 하고, 대선 때까지 그 역할을 계속해야 되기 때문에 (비례대표로) 국회에 들어가실 필요가 있다”고 말한 것을 보면 당 주류 세력의 총선과 대선 전략을 알 수 있다. 친노 주류는 비례대표에 운동권 출신을 대거 당선권 안에 바꿔 넣어 자기편 세력을 확보한 상태다. 김 대표가 총선을 지나 대선 때까지 더민주당의 ‘간판’을 맡아 당이 친노패권주의와 운동권 체질을 청산한 것처럼 보이게 한다면, 총선과 대선에서 이길 수도 있고 그 뒤 당을 되찾아도 된다는 의미가 아니고 뭔가.
이번 비례대표 공천 파동 덕분에 적잖은 국민이 김 대표를 간판으로 앉힌 문 전 대표와 친노의 속셈을 알게 됐다. 김 대표가 진정 명예를 소중히 여긴다면 비례대표 2번과 ‘간판’ 역할을 맞바꿔선 안 된다. 자신이 공언한 대로 친노패권주의와 운동권 체질뿐 아니라 당의 정강정책과 선거 공약까지 완전히 바꿔 놓을 자신이 없다면 깨끗이 물러나는 것이 옳다. 그래서 문 전 대표가 직접 자신의 얼굴로 총선을 치르고 국민의 평가를 받도록 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