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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세돌이 복기한 알파고와의 일주일]초반 우세… 순간의 욕심으로 승기를 놓치다

입력 | 2016-03-23 03:00:00

<5·끝> 아쉬운 패배




4국 승리는 5국에 대한 확신을 심어줬다. 현재 수준의 알파고는 프로 정상급 기사들이 이길 수 있다는 확신이었다. 원래 최종국인 5국에선 흑백을 다시 정하는 돌가리기를 하지만 4국을 마치고 흑을 잡겠다고 했다. 백이 받는 덤이 7집 반인 중국 룰은 흑이 약간 불리하다는 게 정설이지만 흑으로도 이길 수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다.

5국 때 다시 딸과 함께 대국장에 갔다. 3, 4국 때는 부담이 커서 그러지 못했는데 그만큼 마음이 가벼웠다.

초반은 내 예상대로였다. 알파고가 꺼리는 수(실전 흑 17)가 분명히 있었고, 알파고는 예상대로 아예 손을 빼는 방식으로 대응했다. 그 덕에 초반 우하에서 40집이나 되는 실리를 마련했다. 더욱이 우하에서 수를 내려고 한 알파고의 수순 중 악수가 있어 확실히 우세를 잡았다고 봤다.

그런데 우변과 상변에 걸친 백 세력을 삭감하는 것이 초점인 장면에서 내 마음속에 조그만 욕심의 씨앗이 하나 생겼다. 참고 1도 흑 1(실전 흑 69)이 그것이었다. 알파고가 ‘가’로 받아주기만 한다면 이득이었다. 안전 지향인 알파고의 습성상 받아줄 것 같았다. 그러나 알파고는 백 2의 승부수를 던졌다. 불리할 때 확실한 승부수를 던지는 걸 보면 알파고를 정상급 기사 수준으로 볼 수 있는 대목이다. 나도 백 2를 예상하고 있었기 때문에 인간과 뒀다면 참고 2도 흑 1, 3으로 뒀을 것이다. 이랬으면 흑의 우세는 계속 이어졌을 것이다. 알파고의 습성을 알고 대응할 필요는 있지만 그 습성을 짐작해 욕심을 내는 건 옳지 않았다.

결국 패배로 끝난 5국이 이번 시리즈에서 가장 아쉬웠다. 이젠 이길 수 있는 상대를 한순간의 욕심으로 놓쳤다는 부끄러움이 들었다.

알파고와 함께한 일주일은 ‘죽비’와도 같았다. ‘이세돌 바둑’의 문제점이 여과 없이 드러났다. 프로바둑계의 오랜 고정관념도 여지없이 깨졌다. 앞으로 우리가 당연하다고 여겼던 것에 대한 수읽기와 검토가 필요할 것이다.

결과는 1승 4패였지만 이제는 5 대 5의 승부를 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제한시간이 3시간이 된다면 승률이 더 높을 수도 있다. 또 박정환 9단이나 커제 9단이 알파고와 한 달 이내 5번기를 한다면 승리할 수 있을 것이다. 알파고는 아직 완전하지 못하다.

어쨌든 알파고와의 다섯 판이 나와 바둑계 발전에 밑거름이 될 것이다. 패장에게 환호를 보내주는 분들에게 보답해야 한다는 의무감을 느낀다. 인공지능과의 대결에서 패했지만 여전히 바둑엔 승패만으로 재단하지 못하는 무언가가 있다고 믿는다.

정리=서정보 기자 suhcho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