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끝> 아쉬운 패배
5국 때 다시 딸과 함께 대국장에 갔다. 3, 4국 때는 부담이 커서 그러지 못했는데 그만큼 마음이 가벼웠다.
초반은 내 예상대로였다. 알파고가 꺼리는 수(실전 흑 17)가 분명히 있었고, 알파고는 예상대로 아예 손을 빼는 방식으로 대응했다. 그 덕에 초반 우하에서 40집이나 되는 실리를 마련했다. 더욱이 우하에서 수를 내려고 한 알파고의 수순 중 악수가 있어 확실히 우세를 잡았다고 봤다.
결국 패배로 끝난 5국이 이번 시리즈에서 가장 아쉬웠다. 이젠 이길 수 있는 상대를 한순간의 욕심으로 놓쳤다는 부끄러움이 들었다.
알파고와 함께한 일주일은 ‘죽비’와도 같았다. ‘이세돌 바둑’의 문제점이 여과 없이 드러났다. 프로바둑계의 오랜 고정관념도 여지없이 깨졌다. 앞으로 우리가 당연하다고 여겼던 것에 대한 수읽기와 검토가 필요할 것이다.
결과는 1승 4패였지만 이제는 5 대 5의 승부를 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제한시간이 3시간이 된다면 승률이 더 높을 수도 있다. 또 박정환 9단이나 커제 9단이 알파고와 한 달 이내 5번기를 한다면 승리할 수 있을 것이다. 알파고는 아직 완전하지 못하다.
어쨌든 알파고와의 다섯 판이 나와 바둑계 발전에 밑거름이 될 것이다. 패장에게 환호를 보내주는 분들에게 보답해야 한다는 의무감을 느낀다. 인공지능과의 대결에서 패했지만 여전히 바둑엔 승패만으로 재단하지 못하는 무언가가 있다고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