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선 D-21/새누리 공천 갈등]
공천관리위원회와 최고위원회는 22일에도 ‘폭탄 돌리기’ 속에 유 전 원내대표의 공천 결정을 미뤘다. 23일 다시 논의하겠다고 했지만 사실상 ‘유승민 공천 불가’ 방침은 명확해졌다. 이에 따라 유 전 원내대표 스스로 불출마를 할지, 17년간 몸담은 새누리당을 떠나 무소속 출마를 선언할지 결론을 내야 하는 상황에 왔다.
○ 유승민 ‘무소속 출마’ 수순
유 전 원내대표 측 관계자는 22일도 “마지막까지 당의 결정을 기다리겠다”며 말을 아꼈다. 하지만 그의 주변에선 사실상 무소속 출마로 마음을 굳혔다는 말이 나왔다. 이날 유 전 원내대표와 통화한 한 측근은 “당이 컷오프(공천 배제) 대신 대구 동을을 무(無)공천 하더라도 그가 탈당해 무소속으로 출마할 가능성이 99%라고 본다”고 전했다.
가까운 인사들은 무소속 출마의 명분이 축적됐다고 보고 있다. 임계점까지 기다렸는데도 당이 어떤 결론도 내리지 못한 만큼 “주민들에게 직접 심판받겠다”고 할 수 있다는 얘기다. 한 인사는 “새누리당이 동을을 무공천 지역으로 남겨 둔다는 건 공당이 의석을 다른 당에 상납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라며 “무공천 결정은 해당 행위”라고 지적했다. 일각에선 유 전 원내대표의 무소속 출마를 봉쇄한 뒤 후보 등록 기간에 다른 후보를 내세울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유 전 원내대표는 지난해 말 공천 경쟁을 벌인 이재만 전 동구청장이 ‘배신의 정치’ 심판론을 들고 나오자 사석에서 “정치는 자기 뜻으로 그만둬야 한다. 상황을 다 이겨 내고 당선되는 게 정치”라고 말했다고 한다. 친박(친박근혜)계 일각의 관측과 달리 유 전 원내대표가 불출마할 가능성은 낮다는 데 힘이 실리는 이유다.
대구 동을이 ‘무공천 지역’이 될 경우 유 전 원내대표와 이 전 청장은 둘 다 무소속으로 출마해 대결할 가능성이 높다. 이 전 청장은 동아일보와의 통화에서 “공관위의 결정을 끝까지 지켜보는 상황”이라며 “추후 일은 모든 가능성을 열어 두고 검토하겠다”고 말했다.
유 전 원내대표가 무소속 출마를 감행할 경우 컷오프된 가까운 의원들도 동반 탈당할 가능성이 높다. 김희국(대구 중-남), 이종훈(경기 성남분당갑), 류성걸 의원(대구 동갑)은 현재 행보를 밝히지 않은 상태다. 이미 탈당한 조해진(경남 밀양-의령-함안-창녕), 권은희 의원(대구 북갑)은 무소속 출마를 선언했다.
아직 거취를 밝히지 않은 한 의원은 “유 전 원내대표의 결정을 지켜보고 있다”면서도 “‘유승민 병장’ 구하기에 총력을 기울여야 하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컷오프된 비박(비박근혜)계 인사들이 연대하는 것 아니냐는 얘기도 나온다. 하지만 이들이 단일 대오를 형성해 움직일 가능성은 높지 않다. 18대 총선 당시 ‘친박 무소속 연대’는 ‘박근혜’라는 간판으로 묶일 수 있었지만 현재 컷오프된 비박계에는 유 전 원내대표 사단, 친이(친이명박)계 등이 뒤섞여 확실한 구심점이 없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공천 학살’에 대한 반발 여론이 커지면서 무소속 출마가 총선 판세에 일정 부분 영향을 줄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대구 정가에 밝은 한 인사는 “컷오프된 3선의 주호영 의원(대구 수성을)이 탈당해 무소속 출마 대열에 합류하면 유 전 원내대표와 함께 하나의 흐름을 만들며 지역에서 파괴력을 가질 수 있다”고 내다봤다. 친박계는 막판까지 자진 탈당을 압박했다. 홍문종 의원은 라디오에서 “당당하게 무소속으로, 가까운 사람들하고 같이 심판받겠다고 하는 게 제대로 된 리더”라고 말했다.
이런 상황에서 김무성 대표는 공관위가 단수 추천으로 결정한 5곳(서울 은평을·송파을, 경기 성남 분당갑, 대구 동갑, 대구 달성)에 대한 직인을 찍지 않고 있다. 이들 지역에 대해선 ‘옥새 전략’을 이어가고 있는 셈이다. 김 대표가 막판에 유 전 원내대표의 공천 문제와 정종섭 전 행정자치부 장관 등 이른바 ‘진박(진짜 친박) 후보’들의 공천 추인 문제를 연계할지도 주목된다.
홍수영 기자 gae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