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트렌드 생활정보 International edition 매체

[한옥에 살다]농가 한옥이 독특한 카페로

입력 | 2016-03-23 03:00:00


살림집으로 고친 경기 평택의 농가 한옥. 한옥문화원 제공

장명희 한옥문화원장

#1. 순임 씨는 3년 전, 23년 동안 버려두었던 평택의 시골집을 크게 고쳤다. 올해 65세인 남편과 5남매가 나고 자랐고 시부모님께서 세상 떠날 때까지 생활하신 곳이다. 오랫동안 비워 둬 벽체가 무너지고 지붕은 내려앉아 말이 아니었다. 안채에서만 서까래 34개에 기둥뿌리 2개가 썩어 있었다. 다행히 한옥은 상한 부분만 도려낸 후 잇고 덧대어 고치는 것이 가능하다. 처마가 짧아 비가 들이치는 문제도 서까래 끝을 덧대는 방식으로 해결했고 단열에도 신경 썼다. 부엌을 입식으로 고치면서 장작 때는 아궁이도 하나 남겼다. 이 집에서 그녀는 생애 처음 농사를 지었다. 수확한 쌀이며 고구마를 주변과 나누는 즐거움도 누리는 중이다. 지난가을엔 부뚜막에 무쇠 솥을 걸고 메주를 쑤었다.

#2. 인천의 아파트에 살던 서현 씨는 5년 전 강화의 농가 한옥을 사들였다. 7년간 비어 있던 집이다. 더 이상 아파트에 살기 싫었기에, 어려서부터 그냥 좋았던 한옥을 찾아다니던 차였다. 원형을 살려서 고치기로 마음먹었다. 헐고 새로 짓기보다 시간과 비용이 더 드는 일이기에 “미쳤다”고 주변에서 난리였지만 현장에 텐트를 치고 작업을 챙겼다. 안방과 부엌을 합쳐 화장실 갖춘 넓은 안방을 확보했다. 헛간을 부엌으로 바꾸고 넓은 식탁을 놓으니 모두들 “카페 같다”며 좋아했다. 집을 고치고 나니 찾아오는 사람이 많아졌다. 불 때는 방에서 뜨끈하게 지지고 싶어서, 창밖으로 펼쳐지는 풍경을 바라보며 차 한잔 마시고 싶어서. 그녀는 “생활이 자연과 밀착하니 이제야 내 인생을 사는 것 같다”며 즐거워한다.

#3. 사방이 논으로 둘러싸인 나지막한 언덕 위에 카페가 있을 줄은 몰랐다. 하얀 벽체에 붉은 지중해식 기와가 멋지게 어우러진 집이다. 온통 흰색인 내부는 벽체며 문과 창이 일률적이지 않아 자유롭다. 공간에 이끌려 자꾸 안으로 들어가다 갑자기 눈이 확 뜨인다. 천장에 원형 그대로 드러난 서까래가 보인다. 아, 이 집이 원래 초가였구나! 제멋대로 굽고 휜 서까래의 조형미는 하얀 벽과 천장을 바탕 삼아 더욱 극적이다. 남편이 태어나 자란 초가를 어떻게 잘 살릴까 고민하던 부부는 함께 좋아하는 커피를 떠올렸다. 부인이 디자인하고 남편이 실행하면서 고쳐 나갔다. 카페로는 동떨어진 위치인데도 커피 맛과 함께 집이 풍기는 독특한 매력이 상당한 입소문을 타고 있다.

1970년대 초만 해도 농촌 서민들의 주택은 대개 초가였다. 초가는 기와집과 달리 지붕이 가벼우므로 부재가 굵지 않아도 된다. 가까운 산에서 적당히 굽고 휜 나무를 베어 도끼나 자귀로 투덕투덕 껍질만 벗겨 쓴다. 지붕은 농사지어 생산한 벼를 떨어낸 부산물로 겨울 농한기에 만드니 농촌 주택으로는 그야말로 안성맞춤이었다.

짚은 여름에 시원하고 겨울에 따듯하다. 그러나 썩기도 쉬워서 1, 2년마다 이엉을 갈아야 할 뿐 아니라 벌레도 꼬인다. 경제개발기 이런 집들은 불량 주택으로 취급돼 헐려 나갔다. 그 와중에 붉고 푸른 슬레이트 기와나 함석지붕을 얹고 살아남기도 했고 그것을 오늘날 농가 한옥이라 부르고 있다.

예전에는 농촌에서 집을 지을 때, 동네 목수의 지휘 아래 품앗이를 했다. 그러니 “우리 마을은 해 떨어지면 서풍이 불어∼”, “우리 아들이 키가 커서 방이 더 높아야 것는디∼” 하는 식으로, 지역의 환경과 사는 사람의 필요에 맞춰 집을 지었다. 그래서 집은 지역과 시대의 삶을 생생하게 담고 있는 역사 문화 자산이다. 자유로워 아름다운 목구조, 시간의 켜가 풍기는 아우라는 환산 불가능한 가치다.

한국인들의 의식이 변화하고 있다. ‘가치’에 대한 인식과 지향이 뚜렷해지면서 일상에서 구체적인 욕구와 취향을 누리고 싶어 한다. 팔기 위한 집보다 살기 위한 집으로, 획일적인 공간보다 개성 있는 나만의 공간으로 시선을 옮기고 있다.

이들이 추구하는 우선순위가 건강, 개성, 자연과의 교감이다. 거기에 꾸준히 높아지는 전통에 대한 관심이 맞물려 농가 한옥이 지난날 잔뜩 붙이고 있던 군더더기들을 떨어버리고 현대인이 생활 가능한 공간으로 돌아오고 있는 것이다. 귀농인의 살림집으로, 작업장으로, 분위기 있는 카페로.

장명희 한옥문화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