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국 문성근 등 친노 핵심, 김종인 비례 2번 맹공 칩거중인 문재인 뜻 헤아려… 하루 만에 수용으로 돌변 좌익의 贊託 돌변 떠올라 친노, 일단 참고 있지만 총선 이후 패권 재장악할 것
송평인 논설위원
친문(친문재인)으로 불리는 신(新)실세 친노 조국 서울대 교수는 이날 페이스북 글에서 “법정관리인으로 초빙된 김종인이 ‘대표이사’가 됐다”고 비판했다. 그러던 그가 다음 날 오후 김 대표의 순번이 14번으로 조정된 지 몇 시간 뒤에는 돌변했다. 그는 “14번은 김 대표에게 모욕을 준 것”이라며 “순위는 그분에게 맡기는 것이 예의”라고 썼다.
원조 친노 문성근 씨도 마찬가지다. 그는 20일 김 대표의 “비례대표 생각은 추호도 없다”는 과거 발언 기사를 링크하며 김 대표의 말 바꾸기를 비판했다. 이어 다음 날 오전 김 대표가 비대위 회의에 불참하는 등 당무를 거부하자 “후안무치도 유분수”라고 비판의 강도를 높였다. 그러더니 그날 밤에는 “우리에게는 승리가 목표다. 김 대표의 비례 2번을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한다”며 돌아섰다.
사실 김 대표에게 비례 2번을 제안한 것은 문재인 전 대표였다. 김 대표는 13일 동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문 전 대표가 1월 자신을 영입하러 왔을 때 비례 2번을 주겠다는 제안을 했다고 밝힌 바 있다. 문 전 대표는 어제 기자회견에서 “저라도 김 대표를 상위 순번에 모셨을 것”이라며 앞서 그런 제안이 있었음을 시사했다. 친노가 문 전 대표의 깊은 뜻을 헤아리지 못했을 따름이다.
원로 친노 함세웅 신부는 SNS로 의견을 바꾸지도 못하고 졸지에 낙동강 오리알 신세가 됐다. 함 신부는 21일 오후 재야 원로들과 함께 이례적으로 기자회견까지 열어 더민주당 중앙위를 향해 “김 대표의 셀프 공천을 취소하고 당선 가능성의 경계선으로 추정되는 15번 아래로 내려 보내라”고 요구했다. 비대위가 김 대표의 순번을 14번으로 조정할 때만 해도 함 신부의 압박이 먹히는 듯했다. 그러나 재야의 친노도, 비대위도, 중앙위도 지도자의 뜻을 잘못 읽었을 뿐이다. 지도자의 뜻이 전해지자 모든 것이 순식간에 변해버렸다.
이 정도 되면 해방 정국에서 좌익이 모스크바삼상회의 신탁통치 소식을 전해 듣고 반탁에 나섰다가 하루아침에 찬탁으로 돌아선 것이 떠오를 수밖에 없다. 과장된 연상이다. 그러나 본질은 같다. 당은 항상 옳다(Das Partei hat immer Recht). 칩거하고 있는 당 지도자이긴 하지만 당 지도자의 생각은 항상 옳다. ‘내’ 생각이 당 지도자와 달랐다면 ‘내’가 의견을 바꿔야 한다. 그래도 지식인이라면 최소한 자아비판이라도 하고 의견을 바꾼다. 그런 것도 없었다. 강금실 전 법무부 장관 같은 일부 친노는 여전히 저항하고 있다.
친노의 판단 착오 덕분에 4·13총선 이후 더민주당에서 전개될 사태의 예고편을 우연히 볼 수 있었다. 당이 상영을 원치 않았던 예고편이라는 점에서 스포일(spoil)의 성격이 짙다. 물론 스포일이라고 해봐야 다들 예상하고 있는 뻔한 시나리오다. 적절한 때가 되면 오너가 다시 등장해 바지사장을 몰아내고 당을 장악한 뒤 대권에 도전한다는 내용이다. 다만 반항의 친노가 고개를 숙이자 바지사장의 기세가 등등해졌고 영화가 예상보다 흥미롭게 전개될 가능성도 없지는 않다. 그렇다고 기승전‘문(재인)’이라는 기본 플롯이 변하지는 않을 것이다.
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