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러 당한 ‘유럽의 심장’]“나는 브뤼셀이다” 테러에 맞서 연대
벨기에 위로하는 프랑스 21일(현지 시간) 프랑스 일간 르몽드에 실린 만평. 프랑스 국기(왼쪽)가 벨기에 국기를 위로하는 내용이다. 인디펜던트 캡처
브뤼셀=전승훈 특파원
브뤼셀의 관광명소인 오줌싸개 소년의 동상이 있는 ‘그랑 플라스’와 주변 식당가에는 평소엔 관광객들로 붐볐지만 이날은 오가는 사람이 거의 없었다. 상점들도 낮부터 문을 닫았다. 시내 곳곳에서는 밤새 경찰차 사이렌 소리가 간간이 울려 퍼졌다. 브뤼셀 자벤템 국제공항 테러범 중 1명이 현장에서 자폭하지 않고 도주했다는 소식에 대대적인 검거작전이 펼쳐졌기 때문이다.
하루 종일 집 안에 대피했던 시민들은 날이 어두워지자 하나둘 시내 한복판에 있는 증권거래소 앞 ‘라 부르스 광장’으로 몰려들었다. ‘집에 머물러 있으라’는 벨기에 당국의 권고에도 시민들은 광장에서 꽃과 촛불을 바치며 희생자들을 추모했다. 광장 바닥은 흰색, 붉은색, 푸른색 분필로 쓴 평화를 기원하는 메시지들로 가득했다. 프랑스어 네덜란드어 영어 아랍어 키릴어로 쓰인 애도 문구 중에는 ‘사랑으로 증오와 싸우자’ ‘살자, 살게 하자’ ‘사랑은 나의 종교’ 등 사랑을 호소하는 내용이 많았다.
벨기에 위로하는 프랑스 21일(현지 시간) 프랑스 일간 르몽드에 실린 만평. 프랑스 국기(왼쪽)가 벨기에 국기를 위로하는 내용이다. 인디펜던트 캡처
그러나 광장에는 희망과 평화의 메시지뿐 아니라 경계와 분노의 목소리도 작지 않았다. 브뤼셀 자유 대학생인 에스텔 씨(23·여)는 “지난해 파리 테러 이미지의 ‘데자뷔’(어디선가 본 듯한 장면) 때문에 우리가 이미 테러를 경험한 듯한 느낌”이라며 “가장 최악은 어떤 테러가 발생해도 익숙해지고 무감각해지는 것”이라고 말했다. 증권거래소 계단에서 만난 한 여대생은 “우리도 튀니지, 케냐, 파리처럼 테러가 일상화될 것 같아 두렵다”고 말했다. 금융업에 종사하는 세바스티앙 씨(46)는 “브뤼셀은 지난해 파리 테러 이후 며칠간 학교와 상점 등 브뤼셀을 완전히 폐쇄하고 테러범 수색에 나섰지만 결국 폭탄테러를 막지 못했다”며 예고된 테러를 막지 못한 정부를 성토했다. 미국의 테러 전문가들도 미 관련 기관들이 사전에 테러 가능성을 벨기에 당국에 수차례 경고했음을 지적하며 “벨기에 정부의 대테러 역량은 어린애 수준”이라고 혹평했다고 미 온라인신문 데일리비스트가 23일 보도했다.
이날 밤 광장에는 장클로드 융커 EU 집행위원회 위원장, 샤를 미셸 벨기에 총리가 찾아와 헌화했다. 파리 에펠탑을 비롯해 베를린 브란덴부르크 문, 두바이 부르즈 칼리파, 뉴욕 월드트레이드센터 등 세계 주요 도시의 랜드마크 건물들은 적·황·흑색의 벨기에 국기를 상징하는 조명을 건물 외벽에 밝히며 애도와 연대의 뜻을 표했다.
브뤼셀=전승훈 특파원 raph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