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통사고 사망자 2000명 줄이자] [도심 제한속도 10km 낮추자]<5>서울시청∼강남역 10km 주행 비교
《 도심 제한속도를 시속 10km 낮추면 보행자 교통사고를 줄일 수 있다. 하지만 반론도 만만찮다. ‘느림보 운전’이 원활한 교통 흐름을 방해한다는 이유다. 과연 그럴까? 제한속도를 10km가량 낮췄을 때 주행 시간과 교통 흐름에 어떤 영향이 있는지 서울 도심에서 실험해봤다. 》
‘너를 앞질러야 내가 산다.’
도심에서 운전할 때 누구나 한 번쯤 이런 생각을 한다. 한국의 도로가 ‘레이싱 경기장’을 방불케 하는 이유다. 운전자들은 마치 전투하듯 추월과 끼어들기를 반복한다. 과연 이렇게 운전하면 얼마나 빨리 갈 수 있을까.
오후 2시 22분 두 차량이 나란히 출발했다. 이날 서울 도심에선 집회나 공사 등 특별한 변수가 없었다. 교통 흐름에 여유가 생기자 1호차가 앞서가며 간격을 벌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세종대로 사거리에서 우회전 차량이 몰리자 곧 2호차에 따라잡혔다.
남산1호 터널 300∼500m 전부터 정체가 해소됐다. 두 차량의 간격이 벌어졌다. 터널 안에서 2호차 앞으로 차량 4대가 순식간에 끼어들었다. 하지만 한남고가차도에 들어서자 상황이 바뀌었다. 한남대교를 곧바로 탈 수 있는 2개 차로에 차량이 몰려 상습적으로 밀리는 곳이다. 터널을 나온 지 5분도 되지 않아 두 차량의 간격은 다시 50m로 짧아졌다.
다리를 건너 지하철 7호선 논현역까지 200m가량은 끼어드는 차량 때문에 교통 흐름이 답답했다. 평균 3, 4회 신호를 받아야 지나갈 정도였다. 이 구간의 속도는 평균 시속 40km를 넘지 못했다. 목적지인 강남역 사거리에 1호차가 도착한 것은 오후 2시 57분, 2호차는 2시 59분. 각각 35분과 37분 걸렸다.
○ 과속해도 차이 없다
반대로 서울시청을 향해 출발했다. 이번에 1호차는 작정하고 밟아 보기로 했다. 강남역 사거리에서 서초역을 지나 반포대교∼녹사평역∼회현 사거리∼시청으로 돌아오는 코스를 택했다. 제한속도를 무시하기로 한 1호차는 정체가 풀릴 때마다 속도를 높였다. 1호차는 추월차로로, 2호차는 2차로나 3차로를 선택해 달렸다. 그러나 1호차는 반포대교 전까지 ‘과속다운 과속’을 하지 못했다. 출발 9분이 지날 무렵엔 강남성모병원 앞에서 2호차에 추월당하기도 했다.
반포대교에 오르자 1호차는 90km 이상으로 속도를 높일 수 있었다. 이후 녹사평역까지 교통 흐름이 원활해지면서 약 10분간 2호차의 시야에서 1호차가 사라졌다. 하지만 남산 3호 터널을 빠져나와 회현 사거리에서 두 차량은 다시 만났다. 신호 6번을 받아야 지나갈 수 있는 회현 사거리 정체가 1호차의 발목을 잡은 것이다.
결국 도착 전 마지막 신호인 을지입구 사거리에서 1, 2호차는 차량 2대를 가운데 놓고 달리는 상황이 됐다. 2호차가 정지신호에 걸린 탓에 도착 시간은 1호차에 비해 2분 늦었다. 결국 신호 하나 차이로 승부가 갈린 셈이다.
김인석 삼성교통안전문화연구소 부장은 “교통량이 줄어드는 야간에 제한속도 50km가 교통 흐름에 맞지 않다는 의견도 있지만 주간에 비해 시야가 잘 확보되지 않는 환경을 고려해야 한다”며 “무엇보다 제한속도 조정의 가장 큰 효과는 운전자에게 과속을 하지 않게 하는 심리적 규범을 심어 주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정성택 neone@donga.com·박성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