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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gazine D/Face to Face]노동영 서울대 의대 교수의 ‘유방 인생’

입력 | 2016-03-24 16:49:00

“임산부 수술, 가장 안타까워”
● 국내 유방암 최고 권위자
● 유방암 환우 모임 ‘비너스회’ 구심점
● 고학력자, 부유한 환경에서 자란 사람일수록 위험
● 진료만 하는 건 로봇, 의사는 환자 손 잡아줘야








한국비너스회는 유방암 수술환자들의 모임이다. 웹사이트 공식 명칭은 서울대학교 유방암 환우회. 2000년 결성된 비너스회는 온라인이 기반이지만 오프라인 활동도 활발하다. 전국 각지에 지부가 있다. 정기적으로 모임을 갖고, 정보를 교류하고 친목을 다진다. 환자를 위한 쉼터를 운영하고 매월 건강강좌와 노래교실을 연다. 유방암 예방 캠페인에도 앞장선다. 산하조직으로 산악팀, 요가팀, 합창단이 있다. 산악팀은 네팔 원정대를 꾸려 히말라야에 갔다 오기도 했다.

이 열혈여성들의 모임에 ‘복 받은’ 남성 한 명이 끼어 있으니, 그야말로 청일점이다. 히말라야 원정에도 동행했다. 국내 유방암 최고 권위자로 통하는 그는 비너스회의 구심점이자 실질적 창립자이기도 하다. 추앙받는 정도가 교주 급이다.

비너스회 홈페이지에 들어가면, Q & A 코너에서 그의 글을 볼 수 있다. 환자들의 질문에 매일같이 올리는 답글이다. 돈도 안 되는 그 일을 꼬박 15년간 해왔다. 노동영 서울대 의과대 교수. 지금까지 그에게 수술 받은 유방암 환자가 1만여 명이다. 각계 유명 인사들이 다 그의 환자라고 해도 그다지 과장된 표현은 아니다. 표현이 좀 야릇하긴 하지만, 가히 ‘젖가슴과 함께한’ 인생이라 하겠다.

국내 유방암 최고 권위자 노동영 교수 사진=조영철 기자

오후 3시, 서울대병원 본관 연구실에서 만난 그는 수술복을 입은 상태였다. 조금 전 수술을 마쳤다고 했다. 50대 초반으로 보이는 그에게 나이를 물으니, 놀랍게도 올해 1월 환갑을 맞았단다. 머리카락도 검고 숱도 많고 피부도 고운데 말이다. 얼굴과 이마에 주름살도 거의 없다. 게다가 목소리도 좋다. 가벼운 울림을 주는 안정된 중저음이다. 동그란 안경이 인상을 부드럽게 하는 데 한몫한다. 동안(童顔)의 비결을 묻자 “생각에 변함이 없다. 생각이 몸을 지배하지 않는가”라고 선승처럼 말한다. 그에겐 환갑도 별스럽지 않다.


“나이가 많아지면 위축되기 마련이다. 정년이 다가오고 은퇴에 대비해야 한다. 하지만 의사 같은 전문직은 건강이 허락하는 한 계속 일을 할 수 있다. 그래선지 나이를 별로 의식하지 않는다.”

그는 유방암 한 길을 걸어왔다. 1986년 전문의를 땄으니 꼬박 30년간 이 분야에 매진한 셈이다. 서울대병원 유방센터장, 한국유방암학회 이사장을 지냈고, 현재 한국유방건강재단 이사장을 맡고 있다. 이런 공식 직함과 별개로 유방암 예방 홍보와 관련된 각종 캠페인 활동을 주도해왔다. 얼마 전엔 연예인 엄앵란 씨의 유방암을 발견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 엄씨는 채널A ‘나는 몸신이다’ 촬영 중 노 교수로부터 유방암 진단을 받았다.  

환갑이 믿기지 않는 동안(童顔). 비결은 ‘젊은 생각?’ 사진=조영철 기자


-유방 쪽을 전공하게 된 특별한 계기가 있나.


“30년 전만 해도 유방암 발병 자체가 드물었다. 당시 그런 분야를 택하는 건 도전이고 위험이었다. 하지만 반대로 그만큼 성공할 가능성도 컸다. 사실 나도 위암이나 간암 쪽을 하고 싶었다. 그런데 그쪽 지원자가 많아 내가 양보를 해야 했다. 그게 결과적으로 잘 된 셈이다. 학회 만들고 재단 설립하고 홍보하고… 뭐든지 처음 하는 일이었다. 환자 수도 급증했다. 당시엔 한 해 3000명 정도였는데, 지금은 1만8000명에 달한다. 새롭고 창조적인 일을 한다는 데 대한 보람이 컸다. 특허도 많이 냈다.”

-특허라니?

“외과의사지만 생화학을 공부했다. 검진 키트 등 10건 정도 특허가 있다.”

-유방암 발병 환자가 빠르게 증가하지 않나.

“1990년대 이후 매년 6%씩 증가했다. 우리나라 여성의 몸이 서구화된 것이 가장 큰 원인이다. 칼로리 많은 음식을 많이 먹고, 결혼과 출산을 늦추거나 아예 안 하고, 모유 수유를 기피하기 때문이다. 술, 담배도 유방암 발병 위험을 높인다. 초경이 빨라진 점도 영향을 끼친다. 수명이 늘어난 점도 빼놓을 수 없다. 수명이 늘어난다는 건 그만큼 암 발생률이 높아진다는 걸 뜻한다. 현재 한국 여성에게 가장 많이 발생하는 암이 유방암이다. (수술 없이) 검진 단계에서 많이 잡아내는 갑상선암을 제외하면.”

-결혼, 출산이 늦어지는 것과 유방암은 어떤 관계가 있나.

“여성이 에스트로겐 호르몬에 오래 노출될수록 유방암 발병 가능성이 높아진다. 초경이 짧아지면 에스트로겐에 빨리 노출된다. 에스트로겐을 줄이는 방법은 임신을 하는 거다. 모유 수유도 같은 효과가 있다.”

-우리나라에선 유난히 40대 여성의 유방암 발병 비율이 높다는데.

“맞다. 40대 후반이 많다. 서양에선 50대 후반이 많고. 일본, 싱가포르, 중국 등 아시아권에서 유방암이 갑자기 확 늘어난 나라들의 공통된 특징이기도 하다. 경제력이 커지고 영양상태가 좋아진 데 따른 현상이다.”

-일주일에 수술은 몇 번이나 하나.

“열 명쯤. 전에는 스무 명까지도 했는데, 요즘 많이 줄였다.”

-절개수술에 걸리는 시간은?

“한두 시간 걸린다.”

-30년간 이 분야에서만 일해 왔다. 그간 진료한 환자 수가 얼마나 되나.

“수술 환자만 만 명이 넘는다. 외래(진료) 환자를 포함하면 40만~50만 명은 될 거다.”

-진찰할 때는 눈으로 보고 손으로 만지나.

“그건 기본이다.”

-워낙 많이 보니 별 느낌이 없겠다.

“그걸 궁금해하는 사람이 많다.(웃음) 진료할 때는 성적인 느낌이 들지도 않을뿐더러 그런 생각을 할 겨를도 없다. 수치심을 갖지 않게 최대한 배려한다. 반드시 간호사를 옆에 배치하는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환자들이 여자 의사를 선호하지 않나.

“아직 그렇진 않다. 여자 의사가 점차 느는 추세인 건 맞다.”

-서울대병원은 어떤가.

“본원(本院)은 다 남자 의사다. 분당서울대병원에 여의사가 한 명 있다.”

유방은 여성의 미적 상징이자 성적 상징이다. 생명의 젖줄, 생명의 근원이기도 하다. 찬미의 대상인 유방이 생명을 위협하는 존재로 바뀌는 것은 슬픈 일이 아닐 수 없다.

“부적절한 표현일지 몰라도, 나는 유방암 걸린 여성을 약한 존재, 보호해줘야 할 존재로 본다. 혼자서는 두려움을 극복하기 힘들다. 내가 비너스회라는 환자 모임을 만든 것도 그래서다. 모임에 나가 같이 어울리고 수련회 참석도 하고 등산도 같이 한다. 15년 동안 (비너스회) 홈페이지에 내가 올린 답글이 4만 개가 넘는다. 한글을 쓸 줄 아는 전 세계 사람이 다 접속한다. 미국에서도, 유럽에서도, 동남아시아에서도 질문이 올라온다. 누가 내게 ‘의사 하면서 가장 잘한 일이 뭐냐’ 묻는다면, 이 일을 꼽겠다. 매일 아침 일어나 홈페이지 들어가 질문 확인하고 답글 올리는 게 습관이 됐다. 아마도 내가 남성 비뇨기과 환자를 상대한다면 이렇게까지 하지는 않았을 거다.”

-여성에 대한 기사도 정신의 발로란 말인가.

핑크리본 마라톤 대회 포스터 사진=조영철 기자

“그렇게 볼 수 있다. 수술할 때는 늘 음악을 틀어놓는다. 수술 전 마취할 때는 꼭 환자 옆에 붙어있다. 여성 환자에 대한 배려다.”

그가 이사장인 한국유방건강재단의 최대 후원자는 서경배 아모레퍼시픽그룹 회장이다. 미국 유학파인 두 사람은 우리나라에서도 미국처럼 유방암 환자를 돕고 연구활동과 핑크리본 캠페인을 지원하는 재단을 만들자는 데 의기투합했다. 핑크리본은 유방암을 상징하는 국제적 용어다. 1991년 미국에서 열린 유방암 환자 달리기 대회에서 주최 측이 참가자들에게 핑크리본을 나눠준 것이 계기다.

-가장 기억에 남는 수술환자 사례는?

“아무래도 유명인사들 수술 사례가 기억에 남는다. 그런 걸 뺀다면, 임산부를 꼽을 수 있다. 특히 막 임신한 젊은 여성이 수술 받을 때는 정말 안타깝다. 아기를 막 낳아 새로운 삶을 시작하는 여성에게 유방암이 생기는 경우도 그렇고. 임산부는 치료도 쉽지 않다. 아기와 엄마 둘 다 살려야 하지 않나.”

-젊은 임산부가 절개수술을 하면 문제가 있지 않나.

“일단 항암제를 쓴 다음 절개한다. 아기한테 영향이 전혀 없지는 않다. 하지만 엄마도 살리고 아기도 살리려면 그렇게 해야 한다.”

-완치하는 데 얼마나 걸리나.

“완치라는 개념이 모호하긴 한데, 10년 정도 본다.”

-안타까운 사연도 많겠다.

“대체로 어린아이와 관계된다. 젊은 엄마는 ‘아이가 대학 갈 때까지만 살게 해달라’고…. 미혼인 경우에는 당사자보다 부모가 더 애탄다. 검사 도중 상태가 급격히 악화돼 다음 검사를 못 받고 죽은 환자도 있다. 남편이 찾아와 ‘괜찮다고 했는데, 왜 죽느냐. 잘못 검사한 것 아니냐’고 항의했다. 의학적으로 설명하려면 복잡한데, 그럴 수도 있다. 하여간 난리를 피웠는데, 나중에는 ‘아내가 노 박사를 그렇게 믿고 의지했으니 조화나 보내달라’고 부탁하더라. 그래서 보내줬다. 90% 이상은 우리가 예상한 대로 좋은 결과가 나오지만, 10% 정도는 예측하지 못한 상황이 벌어질 수도 있다. 안타까운 일이다.”

-최근 미국에서, 안젤리나 졸리 때문에 유명해진 예방적 유방 절제술이 별 효과가 없다는 연구결과가 나왔다. 어떻게 보나.

“실제로 유전자에 이상이 있으면 80% 이상 유방암이 생긴다. 그래서 예방적 절제수술을 권고하기는 한다. 논란이 있는데, 나는 잘만 하면 예방적 절제수술이 도움이 된다고 믿는 쪽이다. 물론 연령이나 시기를 고려해 신중히 결정해야 한다.”

-가슴 절개는 여성에게 큰 상실감을 안길 텐데.

“그런 점을 배려해 수술과 동시에 복원을 진행하기도 한다. 수술 시 성형외과 팀이 같이 들어간다. 플라스틱 보형 수술은 우리나라가 상당히 앞서가지 않나.”

-부작용은 없나.

“없다.”

-나이 들어 가슴이 유난히 처지는 여성이 있다. 그것과 유방암은 관계없나.

“전혀 관계없다.”

자가검진법을 물어봤다. 그가 작은 모형을 놓고 설명했다.

“생리가 끝난 후 4~7일 사이 가슴이 제일 부드러워진다. 그때 세 손가락으로 가슴을 만져본다. 4등분을 해 여기저기 만져보거나 원을 그리면서 만져본다. 움켜잡지는 말고. 움켜잡으면 무조건 뭔가 있는 것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겨드랑이도 눌러 만져본다. 목욕탕에 가서 비누칠한 상태에서 만져보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비누가 예민도를 높이기 때문이다.”

-뭔가 딱딱한 게 만져지면 의심스러운 건가.

“그렇다. 없던 게 만져진다든지 피부에 변화가 있다든지 유두가 들어갔다면 의심해봐야 한다. 평소 관심 갖는 게 중요하다. 1년에 한두 번씩 정기 검진도 받고.”

-분비물이 나오는 것도 징후라고 들었다.

“맞다. 하지만 그게 다 암은 아니다.”

-남편이 도와줄 방법이나 주의해야 할 일은 없나.

“더러 남편이 찾아내 병원에 오는 경우도 있다. 부인이 정기검진을 받도록 챙겨주는 게 도와주는 것이다.”

-여성이 성관계를 너무 안 하면 암에 걸릴 확률이 커진다는 얘기도 있던데….

“잘못된 얘기다.”

그는 “식습관이 가장 중요하다”고 다시 한번 강조했다. 칼로리를 과다 섭취하지 말고, 고기를 어느 정도 먹되 반드시 야채와 과일을 곁들여야 한다고 했다. 또한 술, 담배도 절제하는 것이 좋다고 했다.

-재벌가 등 부유한 집안에서 자란 사람 중에 유방암 환자가 많을 수도 있겠다.

“그런 면도 있다. 고학력에 경제력이 큰 사람들 중에서 많이 발견된다는 학계 보고가 있다. 고학력자의 경우 결혼도 늦고 아이도 안 낳거나 적게 낳는 경향이 있다. 그런 점도 영향을 끼친다.”

-의술 철학이 있다면 얘기해 달라.

“의학의 본질은 질병을 치료하는 게 아니라 인간을 치료하는 것이다. 우리는 알파고를 보면서 인간에 대해 더 깊이 있게 생각하게 됐다. 의사는 인간을 폭넓게 봐야 한다. 문학이나 예술 등 인문학을 자주 접해야 하는 이유다. 의학의 미래는 인간에게 위협적이다. 인간성을 잃게 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 잘 대처해야 한다.”  

그가 자신의 후배에게 교육한다는 내용을 들려줬다.

“요즘 의사가 컴퓨터만 보고 환자 얼굴을 쳐다보지 않는 경우가 많다. 암병원 원장 할 때 컴퓨터 4대로 환자 사이에 벽을 쌓은 후배 의사에게 이렇게 말해준 적이 있다. ‘네가 환자를 쳐다보지 않고 진료하는 건 후배의 직장을 없애는 것’이라고. 아픈 사람을 바라보면서 손을 잡아주는 게 의사다. 진료만 하는 건 로봇이다. 환자와 교감하지 않으면 의사 일 자체가 힘들어진다.”

-살아가면서 가장 소중하게 여기는 가치는 뭔가.

 
“가치라기보다는 좋아하는 글이 있다. 도리불언하자성혜((桃李不言下自成蹊). ‘복숭아와 오얏은 그 아름다움을 말하지 않아도 사람들이 꽃을 보려 모여 저절로 길이 생긴다’는 뜻이다.”

-스스로 그런 존재가 되고 싶다는 얘긴가.

“그렇다. 내 호도 ‘성혜’다. 장인이 지어줬다.”

그의 책상 뒤편 선반에 쌓인 인형에 눈길이 갔다. 유난히 핑크빛이 많다. 유방이 두드러진 조각상도 여러 개다. 직업병이 취미가 된 모양이다. 

노동영 교수가 소장한 유방 조각품들 사진=조영철 기자


조성식 기자 mairso2@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