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승민 의원이 지난해 ‘국회법 파동’으로 새누리당 원내대표를 사퇴할 때 헌법 1조 1항을 들이대더니 그제 탈당 때는 헌법 1조 2항을 거론했다. 헌법 1조는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1항),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2항)로 구성된다. 2항은 국민이 대통령과 국회를 선출한다는 의미다. 유 의원은 박근혜 대통령을 향해 “국회의원은 대통령이 아니라 국민이 뽑는 것”이라며 주권재민(主權在民)의 기치를 들어 항의한 것이다.
▷헌법은 국민과 대통령 사이에, 또 국민과 국회의원 사이에 반드시 정당을 상정하지는 않는다. 헌법에서 정당은 기본이 아니라 선택 사양이다. 정당은 프리미엄일 뿐이다. 대구 유권자들에게는 유 의원이 새누리당 공천을 받지 못했다고 해서 그를 뽑을 기회가 사라진 것은 아니다. 사라진 것은 유 의원이 지금까지 여당 텃밭에서 누렸던 다디단 프리미엄이다.
▷물론 프리미엄을 주거나 뺏는 것도 공정해야 한다. 유 의원이 지난해 원내대표 시절 대통령의 행정입법권을 제한하려고 한 것은 삼권분립을 훼손할 심각한 오류였다. 그렇다고 그의 정체성이 보수 정당의 범위를 크게 벗어난다고 보긴 힘들다. 그런 의원이 전국적으로 명망이 높고 지역구에서 다수의 지지를 받으면 공천하는 것이 상식에 맞다. 정당은 연대다. 도저히 함께하지 못할 만큼의 이념 차이가 아니라면 가능한 한 ‘덧셈 정치’를 해야 한다.
▷그럼에도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거창한 구호는 후보가 부당하게 체포되거나 자택 연금되던 독재 시대에나 어울린다. 지금은 유권자가 후보를 뽑을 기회를 박탈당하거나, 후보가 유권자에게 뽑힐 기회를 박탈당하는 시대가 아니다. 유 의원이 떼놓은 당상(堂上)을 뺏긴 것인지도 견해가 엇갈리는 데다 툭하면 헌법 운운하는 것은 ‘꽃신 신고 꽃길만 걸어온’ 사람이 운동권 흉내 내는 것 같다. 2008년 공천에서 ‘학살’된 친박은 거친 들판으로 뛰쳐나가 프리미엄 없이 당선됐고 결국 권력을 접수했다. 억울해도 ‘얼라’가 아니라 어른이면 그렇게 해야 한다.
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