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영훈 수석논설위원
김무성 대표(무대)의 ‘신의 한 수’, 아니 급소인 ‘빈삼각’에 돌을 놓은 ‘옥새 반격’에 청와대와 친박 핵심은 속수무책이었다. 옥새의 정확한 명칭은 당인(黨印)이다. 공천장에 당인과 대표 직인을 찍어야 선관위에 낼 수 있다. 어제 새누리당 최고위원회에선 도장 행방을 놓고 입씨름까지 벌였다. 참 가관이다.
이세돌은 3연패 뒤 절체절명의 4번째 대국 후반부 중원에서 끼워 넣는 회심의 한 수를 둬 알파고를 버그 상태에 빠뜨렸다. 이후 알파고는 이해할 수 없는 두어 수를 뒀다. 그랬던 것처럼 ‘한구 로봇’도 한순간에 마비됐다. 극히 드문 예외를 빼곤 프로 기사라면 빈삼각에 돌을 놓지 않아 당황한 모양이다.
바둑에 입문하면 “빈삼각은 두지 마라”라고 가르친다. 로봇 한구는 무대가 옥쇄(玉碎·깨끗이 죽음)하듯 어리석게 ‘빈삼각 반란’을 감행하리라 상상조차 못한 것 같다. 의외의 수에 고수는 흔들려도 곧 정신을 차린다. 반면 영혼 없는 로봇은 마비 상태로 빠져든다. 로봇 한구뿐 아니다. 집권 여당 전체가 그 꼬락서니다.
극동에서 가장 먼저 개방한 일본은 서양에 바둑을 보급했다. 그래서 바둑은 ‘The game Go(더 게임 고)’라 불린다. 알파고는 ‘알파(A에 해당)+고(Go·바둑 碁·기의 일본어 음독)’를 합친 이름. 알파고는 ‘바둑에서 첫째 혹은 최고’라는 뜻이다. 영어로 수(手)는 ‘move’, 묘수는 ‘capital move’라고 번역한다.
누가 번역했는지 놀랍다. 수라고 하는 것이 상대와 실력에 따라 천변만화(千變萬化)하는 흐름임을 절묘하게 담았다. 알파고는 1200대 중앙처리장치가 연결된 슈퍼컴퓨터다. 초당 10만 수를 검색한다. 그래서 컴퓨터의 계산이 아니라 기사 1200명의 협업 플레이에 이세돌이 졌다는 분석까지 나올 정도다.
작년 봄 소설문학에 ‘묘수’라는 단편소설을 발표한 작가 서영은은 이렇게 말했다. “이세돌과 알파고의 대국에서 우리가 보아야 하는 것은 이기고 지는 문제가 아니다. 그의 땀, 그의 외로움이 알파고를 넘어서는 인간의 존엄이라는 사실이다. 짐으로써 이세돌은 인간의 존엄함을 세상에 보여줬다. 기계는 입력 자체다. 뒤에서 누군가 조종한다. 그런 인공지능 로봇이 결코 대신할 수 없는….”
최영훈 수석논설위원 tao4@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