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꽃 1번지’ 서귀포 유채 여행
《대한민국 지도를 180도 돌려보자. 당연히 제주도가 가장 위에 놓이고 반대로 북-중 국경은 맨 아래가 된다. 굳이 이렇게 해보려는
이유. 봄꽃에 관한 한 서귀포가 전국 ‘1번지’라는 것을 확실히 느낄 수 있어서다. 우리나라 최남단의 도시 서귀포에선 화신을
전하는 봄꽃도 다양하다. 매화 복사꽃 등등. 그래도 가장 먼저 떠오르는 건 유채꽃이다. 한번만 보면 평생토록 잊지 못할
장관이어서다. 가장 보기 좋을 때는 3월 하순부터 6월 초까지. 서귀포의 봄을 상징하는 유채꽃밭으로 안내한다.》
유채꽃을 보며 걷는 서귀포의 바다
유채꽃이 가장 아름다운 때는 바로 지금, 이제 막 핀 노란 꽃이 초록 풀대와 어울려 풋풋한 연둣빛으로 비칠 즈음이다. 한때는 딸아들의 육지대학 등록금도 충당해줄만큼 돈벌이가 됐던 풀이건만 이젠 관상용으로 재배해야 볼 수 있게 됐으니 격세지감이 아닐 수 없다. 그럼에도 서귀포 봄풍경에 이만한 것이 없으니 이 유채꽃밭이야말로 서귀포 봄빛의 대표선수다. 중문색달해변 근방의 엉덩물계곡에서 촬영.
유채꽃밭은 서귀포 걷기 중에 가장 흥겨운 볼거리다. 그러나 유채꽃이 전부는 아니다. 건듯 부는 산들바람과 따사로운 햇볕도 겨우내 움츠렸던 여행자의 몸과 마음을 마구 풀어헤친다. 이날을 위해 서귀포시는 매년 9월이면 유채 씨앗을 곳곳에 뿌린다. 올해는 유채꽃으로 장식한 18m 길이의 샐러드 빵(롯데호텔 제주 조리)까지 등장했다.
제주도가 유채재배를 시작한 건 6·25전쟁 직후. 1970년대까지만 해도 감귤과 더불어 고소득 작물로 인기가 높았다. 유채꽃을 팔아 뭍으로 진학한 아들딸의 대학등록금을 대고, 소 돼지를 사는데도 보탰다. 하지만 1991년 농산물 수입개방조치로 된서리를 맞았다. 정부수매 품목에서 제외되면서 경작지가 점점 줄어들었다. 한때는 재배 면적이 1만 ha를 넘었지만 이젠 245ha(2015년 현재)뿐. 그나마 관광용으로 조성돼 제주도의 봄 풍경으로 남게 된 것은 다행이다.
올해 유채꽃 풍경 중의 최고는 색달해변(중문) 위쪽의 엉덩물계곡. 롯데호텔과 한국콘도가 있는 언덕 아래의 아담한 계곡이 온통 유채꽃밭으로 변했다. 또 한 곳은 안덕면 대평리와 하예동의 두 방파제를 잇는 바닷가길. 난드르로(路) 21번 길로 이어지는 제주올레길 제9코스 일부로 유채꽃이 길가에 줄지어 피어있다. 제주토종 왕벚꽃이 피는 4월 초에 서귀포를 찾는다면 표선면 가시리의 녹산로(옛 정석항공로)를 권한다. 10km에 이르는 한적한 녹산로는 평소에도 드라이브코스로 인기가 높다. 이맘때면 유채꽃은 물론이고 길가의 왕벚꽃도 만개해 일대 장관을 이룬다. 제주시 왕벚꽃 축제는 4월 1∼10일.
화가 이중섭에겐 낙원이었던 서귀포
서귀포 칠십리의 중심은 서귀포항. 서귀포 앞바다에 있는 세 섬(문섬, 섶섬, 범섬) 중 문섬과 마주하고 북쪽 배후에 있는 언덕을 중심으로 발달했다. 조선시대에 왜구를 막느라 쌓은 서귀 진지는 그 아래 솔동산에 있고, 고기잡이 어부는 그 언덕중턱의 알자리동산에 살았다. 거긴 지금도 찾기가 어렵지 않다. 화가 이중섭이 살던 집과 미술관이 있는 이중섭 거리가 거기다. 이중섭이 1951년에 살던 집은 1995년에 거의 똑같이 복원했다. 굵은 끈으로 동여맨 초가집과 삐뚤빼뚤한 현무암 돌담은 제주도 골목길 올레의 원형이다.
올해는 화가 이중섭(1916∼1956)이 태어난 지 100년. 지난주 그가 잠시 살았던 그 집을 찾았다. 1·4후퇴 때 원산에서 배를 타고 피란 온 이중섭 가족에게 방 한 칸을 선뜻 내어준 여주인도 만날 수 있었다. 올해 96세의 김순복 씨다. 할머니는 봄볕 따사로운 툇마루에 혼자 우두커니 앉아 해바라기중이었다. 옆에선 ‘섭’이라는 진돗개가 늘어지게 낮잠을 자고…. 하필이면 개 이름이 왜 ‘이중섭’의 끝자일까 궁금해 말을 청했다. 하지만 눈길도 주지 않은 채 무표정한 얼굴로 허공만 응시했다.
‘작가의 산책길’ 해설사 모임의 정연자 회장이 사정을 들려줬다. 할머니는 지난해까지만 해도 방문객과 소소한 대화를 나눴지만 지금은 그렇지 못하고 이렇게 지내신다고 했다. 비록 1년밖에 살지 않았지만 이중섭에게 이 집은 ‘지상낙원’이었다. 가족과 함께 지낼 수 있었기 때문. 이중섭은 이듬해 부산으로 옮긴 후 6개월 만에 가족을 일본으로 보내고 죽을 때까지 딱 한 번밖에 만나지 못했다.
이중섭은 이 집에서 많은 그림을 남겼다. 그중엔 할머니의 남편 초상화도 한 점 있었다. 사진이 귀하던 시절이라 사진 대신으로 그려준 것인데 안타깝게도 여주인 김 씨는 그걸 갖고 있지 않다. 죽은 남편이 꿈에 자꾸 보이자 벽에 걸려 있던 이 그림을 마당에서 불태워 버렸다고 한다.
서귀포시(제주특별자치도)에서
조성하 전문기자 summer@donga.com
▼여행정보▼
찾아가기: 서귀포의 올해 유채꽃 명소는 다음과 같다. ◇엉덩물계곡: 내비게이션에 ‘중문해수욕장’을 친다. 이웃한 주차장이 계곡초입
◇난드르로 해안길: 내비게이션에 ‘하예포구’를 친다. 거기서 서쪽 해안로를 따른다. 제주올레길 제9코스(대평∼화순) 참조
뭉뚝 썬 뒤 저울에 달아 근(斤·600g)으로 팔았다고 해서 나온 이름. 근고기는 깍두기처럼 도톰하게 썰어 연탄불에 구워 먹는다.
‘삼춘’은 ‘삼촌’이라는 뜻으로 제주도에서 식당 종업원을 부르는 일반호칭(육지의 ‘이모’에 해당). 이 식당주인은 최근 4명의 전
직원과 함께 제주도로 이주한 디자인회사 ‘브리지프로젝트’의 대표 오찬희 씨(31). 주방장도 서울출신이라 음식과 분위기가
토속식당과는 다르다. 위층 카페에선 이 회사의 페이퍼 토이(인쇄된 종이를 자르고 붙여서 만드는 캐릭터)를 무료 체험할 수
있다(당분간). 서귀포시 월드컵로163, 064-738-4490. 네이버 블로그 ‘bridgeproject’
▼서귀포 새 명물 떠오른 ‘트멍 주말장터’▼
말고기 햄버거… 오메기떡 와플… 입이 행복한 시장
말빵을 구워 파는 트멍주말장터의 ‘고수목마’.
‘트멍’은 ‘틈’의 제주방언. 시장에 어렵사리 틈을 내서 만든 곳이라 그렇게 부른다. 5일장(4, 9일)과 주말(토·일요일)에만
문을 연다.
향토5일장은 제주도에 남아 있는 몇 안 되는 5일장 중 하나. 아케이드의 매일올레시장과는 달리 분위기가
흥청대는 시장에 가깝다. 위치는 어물전 옆으로 삼각형의 닫힌 공간은 7가지 음식 매대로 구성된 자그마한 푸드 코트. 돼지고기,
말고기 등 기존 시장에선 맛볼 수 없는 음식을 주로 판다. 말고기 햄버거, 꺼멍돈꼬쟁(흑돼지 꼬치), 오메기떡 와플 등등.
각 음식 매대엔 녹담만설, 영구춘화, 정방하폭 등의 이름이 붙어있는데 모두 영주십경(瀛州十景·제주도의 비경 열 가지)에서
따왔다. 두 곳에선 필리핀과 베트남인 며느리가 고향의 음식을 낸다. 장을 볼 동안 자녀를 돌봐주는 키즈 카페도 있다.
이 시장은 소상공인시장진흥공단의 ‘골목형 시장육성’사업으로 만들었다. 트멍장터의 고민정 실장은 “장이 파할 즈음엔 야채과일경매도 펼쳐 서귀포를 찾은 여행객에게 추억을 선물하려 노력 중”이라고 말했다.
트멍 시장: ◇운영시간 ▽장날(4, 9일): 오전 10시∼오후 8시 ▽주말: 정오∼오후 8시 ▽홈피:
http://서귀포향토5일시장. 한국 ▽주소: 서귀포시 중산간동로 7894번 길 18-5(동홍동 779-1) ▽전화:
064-763-0965 ▽찾아가기 △600번(공항리무진): 뉴경남호텔 하차∼150m∼시내버스 5번 승차∼향토5일시장 하차
△시내버스 6번: 서귀포 일호광장 중앙로터리에서 승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