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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속의 이 한줄]상처 주고받는 숙명… 모든 이에게 사과하고 싶다

입력 | 2016-03-28 03:00:00


《 서로 잘해주고 싶은데도 살다 보면 날마다 이런 가해와 피해의 목록이 조금씩 늘어나는 것 같다. 양쪽을 상쇄하면 영(0)이 될 수도 있겠지만 그렇다고 마음이 개운해지지는 않는다.―부엌(오수연·이룸·2001년 》








학창시절 유독 나에게 잘해준 친구가 있었다. 이유 없이 나를 챙겨줬던 그 친구에게 가끔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반대로 내가 잘해준 만큼 나를 생각해주지 않아 서운했던 친구도 있었다. 살다 보면 누군가에게 받은 사랑을 다른 사람에게 갚거나, 누군가에게 받은 상처를 엉뚱한 사람에게 돌려주는 일이 종종 벌어진다.

오수연의 연작소설 ‘부엌’은 먹고 사는 일을 다룬 소설이다. 첫 번째 소설 ‘부엌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가’의 주인공은 요리하지 않기 위해 낯선 인도로 왔다. 누군가와 함께 살려면 둘 중 한 사람은 음식을 만들어야 한다. 누군가를 위해 음식을 만들고 싶지 않고, 나 때문에 다른 사람이 음식을 만드는 것도 싫어서 홀로 고향을 떠나온 것이다.

하지만 인도에서도 먹고 살기 위한 전투는 계속된다. 주인공은 인도에서 만난 친구 ‘다모’를 위해 요리하고, 또 다른 친구 ‘무라뜨’가 해준 요리를 먹는다. 그는 누구에게도 상처 주지 않으려고 애쓰다가 결국 둘 모두에게 상처를 주고 만다.

소설에서 요리는 인간관계에 대한 은유다. 살면서 누군가에게 상처 주거나, 누군가로부터 상처받지 않을 수 없다는 사실을 빗댄 것이다. 사람은 먹지 않고 살 수 없듯이 누군가와 상처를 주고받지 않고선 살아갈 수 없다. 살아온 날이 늘어날수록 상처의 목록도 점점 더 길어진다. 내 삶의 가해와 피해 목록을 돌이켜보니 문득 우울해진다. 작가는 주인공의 입을 빌려 우울해진 독자들을 위로해준다.

‘나는 미안하다고 얘기하고 싶다. 내 주변에 존재한다는 이유만으로 나와 부딪쳐 내게 상처를 주고, 자신도 상처받았을 모든 사람들에게 어쩔 수가 없었노라고 사죄하고 싶다. 나는 다만 살고 싶었을 뿐이라고.’

주애진 기자 jaj@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