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재정지원사업 ‘교육부 일방통행’]대학들 “지원 근시안적” 불만 고조
○ “대학은 21세기, 교육부는 20세기 인식”
우선 ‘고등교육의 발전을 위해 무엇이 필요한가’라는 주제를 놓고 정부와 대학 사이 인식 격차가 크다는 점이 문제로 꼽힌다.
이런 지적은 이번에 설문조사 대상에 포함되지 않은 대학들에서도 지속적으로 제기된다. 서울의 한 대형 사립대 총장은 “당장 몇 년 뒤에 산업계가 어떻게 바뀔지 예측하기 어려운 시대에 산업수요라는 명목으로 수요와 공급을 멋대로 산출해서 평가 기준으로 쓴다”며 “대학은 교육부를 전적으로 믿고 따라가기 어렵다”고 말했다.
대통령이나 장관이 바뀔 때마다 각종 사업이 생기고 사라지기를 반복하는 것도 고질적인 문제다. 일례로 2014년 7월부터 진행 중인 대학특성화(CK)사업은 현장에서 긍정적인 평가를 받고 있지만 종료 시한은 2년 뒤로 정해져 있다. 한 국립대 관계자는 “BK21을 제외한 교육부 사업들은 통상 4, 5년짜리로 만들어진다. 고작 이 정도 기간을 투자해서 대학 경쟁력을 높인다는 계획은 무리”라고 말했다.
대학이 이처럼 교육부의 재정지원사업에 불만을 갖고 있으면서도 목숨을 걸다시피 매달릴 수밖에 없는 구조도 문제다. 기부금을 모아 적립금을 쌓고, 이를 운용해 재정의 상당 부분을 충당하는 외국 대학과 달리 한국 대학은 등록금과 정부의 재정 지원에 대한 의존도가 절대적이다. 2009년 이후 정부가 등록금의 동결 또는 인하를 압박해온 상황에서 대학들이 교육부의 지원금에 절박하게 매달리는 이유다.
일부 사립대는 재정지원사업을 따내기 위해 전담 부서를 신설해 인력을 집중 투입하고, 사업지원서를 쓸 때마다 외부에서 컨설팅까지 받는다. 한 사립대 관계자는 “돈이 궁해서 정부 사업비를 따내야 하는데, 이를 위해 또다시 돈을 써야 하는 어처구니없는 상황이 반복되고 있다”고 말했다.
○ 부처 간 중복-대학 간 불균형도 문제
대학들은 여러 부처에서 중복적으로 사업을 내놓는 것을 애로 사항으로 꼽고 있다. 예를 들어 산학협력의 경우 교육부, 고용노동부, 중소기업청 등에서 각각 사업을 진행하는데 평가 방식이나 배점이 달라 한 사업단에서 여러 개의 사업계획을 짜야 한다. 대학 현장에서는 부처 간 알력으로 인해 “○○부에서 돈을 받으면 ××부 눈 밖에 난다”는 말이 돌 정도로 대학들이 눈치를 보는 부작용도 생긴다.
BK21플러스나 CK 사업의 경우 특정 학문 분야에서는 미래창조과학부나 산업통상자원부와 중복된다. 서울 상위권 사립대 관계자는 “연구와 관련된 지원은 교육부와 미래부 간 겹치는 게 많아서 정부가 정리를 해줘야 한다”며 “중복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교수들이 재정지원사업을 따내려고 행정 처리만 하느라 진짜 연구를 못 하게 된다”고 지적했다.
평가 기준이 국공립대와 사립대, 수도권대와 지방대의 차이를 반영하지 못한다는 점도 한계로 지적된다. 지방 국립대 관계자는 “국립대는 기초학문 등 여러 분야를 육성해야 하는 책임이 있고 지역사회의 요구에도 부응해야 한다”며 “이런 환경에서 파격적인 구조조정을 요구하는 프라임은 엄두도 못 낸다”고 말했다. 지방 사립대 관계자는 “재정지원사업이 3년간의 실적이나 교수확보율 같은 정량 지표를 요구하니 지방대는 불리할 수밖에 없다”고 토로했다.
교육부는 대학들의 이 같은 비판 중 일부는 문제가 있다며 수긍했다. 교육부 관계자는 “현재 교육부 사업이 주로 톱다운 방식인 점은 맞다”며 “장기적으로는 대학이 잘하는 것을 자율적으로 하겠다고 하면 재정을 지원하는 방향으로 가려 한다”고 말했다.
국립대가 상대적으로 불리하다는 지적에 대해서 교육부는 “국립대는 국립대만 누릴 수 있는 재정지원 혜택 등이 있기 때문에 여러 측면을 고려해야 한다”고 반박했다. 부처 간 사업 중복 문제와 사업의 연속성 문제에 대해서는 “미래부나 산업부 등에서 하는 사업은 특정 사업 분야에 대한 연구 지원의 성격이 강하고, 교육부 사업은 대학 경쟁력 강화가 초점이라 좀 다르다”며 “한 가지 사업을 오래하는 것이 장점도 있겠지만, 한번 선정된 사업단이나 교수가 10년, 20년 계속 지원을 받는 것이 옳은지는 생각해볼 문제”라고 말했다.
최예나 yena@donga.com·이은택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