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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희균 기자의 교육&공감]3월, 위기의 아이들

입력 | 2016-03-28 03:00:00


일러스트레이션 권기령 기자 beanoil@donga.com

김희균 기자

얼마 전 교육 분야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모인 자리에 초중고교생 자녀를 둔 이들이 두루 함께하게 됐다. 3월 신학기 초여서 그런지 유독 아이들의 학교 적응 문제에 대한 이야기가 많이 나왔다. 특히 초등학교 고학년과 중학생 자녀를 둔 이들은 요즘 교우 관계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위주로 돌아가는 것에 대한 걱정이 많았다.

예전에는 학년이 바뀌면 옆자리에 앉은 아이들과 먼저 통성명을 하고 하나둘씩 부대끼며 친구를 늘려갔다. 하지만 요즘은 학년이 바뀌면 첫날 바로 휴대전화 번호를 교환하고 단체 채팅방을 만들거나, 밴드나 카페처럼 폐쇄적인 그룹을 형성하곤 한다. 아이들은 3월 중순까지 이런 온라인 소그룹에 끼지 못하면 소외감에 시달린다. 특히 상호작용과 교감에 민감한 여자아이들은 스트레스가 더 크다.

모임에 함께한 중학교 교사 A 씨는 요즘 중고교생들의 스마트폰 중독 정도가 날로 심해지는 것을 늘 걱정해 왔다. 몇 년 전부터 모임에 나올 때마다 “아이들에게는 최대한 스마트폰을 늦게 사주라”고 당부하곤 했었다. 하지만 A 씨는 올해 초등학교 5학년이 된 딸이 같은 반 여자아이들끼리 하는 단체 채팅방에 끼지 못해서 교실에서도 대화를 할 수가 없다고 하소연하는 바람에 결국 스마트폰을 사주었다며 한숨을 쉬었다.

몇 년간 외국에서 살다가 지난해 귀국한 교수 B 씨는 중학생 아들이 한국 학교에 잘 적응하지 못하는 이유로 스마트폰을 들었다. 또래 아이들이 많이 하는 모바일 게임의 채팅창을 통해서 같은 반 아이들끼리 대화가 오가는데, 아들은 스마트폰이 없어서 친구가 별로 없는 것 같다고 걱정했다.

하지만 스마트폰을 쥐여준다고 해서 이런 문제가 다 해소되는 것은 아니다. 요즘 아이들의 단체 채팅방에는 어른들은 잘 모르는 괴롭힘 유형이 다양하다. 단체 채팅방에서 특정 아이가 말을 하면 나머지 아이들이 아무도 대답하지 않고 무시하는 ‘카톡 왕따’가 있다. 반대로 괴롭히려는 아이를 일부러 단체 채팅방에 불러들여서 험한 말을 하고, 그 아이가 채팅방을 나가면 계속 초대해서 괴롭히는 ‘카톡 감옥’이라는 것도 있다.

인근에 초등학교 두 곳과 여중 한 곳을 끼고 있는 서울 마포구의 한 정신의학과 원장은 아이들이 가장 많이 오는 시기가 3월 말이라고 했다. 아이들이 3월에 정신과를 찾는 이유는 예나 지금이나 학기 초의 적응 문제가 대부분이지만, 요즘은 그중에서도 눈에 띄게 사이버 따돌림을 호소하는 사례가 많다고 한다.

이런 문제는 학습 부진이나 오프라인상의 따돌림과는 달리 부모도, 교사도 알아차리기가 쉽지 않다. 아이들은 단체 채팅방에서 어울리지 못하는 데 따른 스트레스를 부모에게 얘기해봤자 해결책이 나올 거라고 기대하지 않고, 사이버 폭력을 당한다고 말하면 부모가 스마트폰을 압수할지 모른다는 생각 때문에 그냥 입을 닫는다.

소아청소년정신과 전문의들은 신학기에 아이들이 별다른 이유 없이 불안해하거나 말수가 줄어든다면 부모가 각별히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고 조언한다. 단체 생활에 적응하지 못한다면 초등학교 저학년들은 배가 아프다거나 틱 증상이 생기는 등 신체적인 증상이 분명하게 나타난다. 반면 초등학교 고학년 이상의 아이들은 대부분 신체적인 이상이 없어서 부모가 무심히 넘기기 쉽기 때문이다.

자녀가 먼저 표현을 하지 않을 때 부모가 할 수 있는 일은 최대한 자녀의 마음을 헤아려 주려고 노력하는 것이다. 새로운 환경에 곧잘 적응하는 아이들도 학년 초에는 어느 정도 긴장하고 스트레스를 받기 마련이다. 이런 와중에 또래 그룹에 끼지 못하거나, 사이버상에서 괴롭힘을 받게 되면 불안, 예민함, 우울 같은 마음의 병이 커지기 마련이다. 평소 대화 시간이 부족한 부모라도 3월만큼은, 아니 3월이 가기 전에는 “친구들과 어떻게 지낼지 초조하지?”, “네가 좀 불안하겠구나!”라고 말을 건네며 아이의 마음을 열어보자.

김희균 기자 foryou@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