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르주 쇠라의 ‘서커스’(1891)
화가는 도시화, 산업화와 함께 빠르게 확산된 여가 문화를 즐겨 그렸지요. 그림 속 인물들은 공원과 유원지에서 물놀이와 뱃놀이로 휴일을 보냅니다. 카페와 공연장에서 캉캉과 서커스를 관람하며 여가를 즐깁니다. 새로운 주제는 아닙니다. 인상주의 미술도 붓으로 도시의 일상을 포착하고자 했으니까요. 그럼에도 화가의 미술은 결이 다릅니다.
기하학적 화면 구성 때문일까요. 휴식과 놀이의 순간조차 질서정연합니다. 고대 벽화에서 걸어 나온 것 같은 정적인 분위기의 인물들 때문일까요. 행락객의 모습에 긴장감이 넘칩니다. 마냥 여유로워 보이지 않습니다. 이런 절제된 분위기는 ‘서커스’에서도 반복됩니다.
버거운 삶에서 벗어나고픈 자유와 해방의 꿈이 위로와 공감으로 바뀐 것일까요. 관계의 소원함이 깊어지는 시대, 익명성에 기반을 둔 사회관계망서비스가 새로운 소통 창구로 속속 등장하고 있습니다. 누군지 밝히지 않은 채 부담 없이 현실의 고민을 털어놓을 수 있답니다. 일면식 없는 누군가가 따뜻한 위로의 말을 건넨답니다. 100여 년 전 늦은 밤 서커스 공연장에서 비밀스러운 대화를 나누던 관객들은 짐작이나 했을까요. 훗날 뉴미디어 시대의 사람들이 전혀 모르는 타인들에게 주목하리라는 것을요. 그것도 나의 고단함을 달래 주고, 걱정거리를 토닥여 줄 적임자로 말입니다.
공주형 한신대 교수·미술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