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레이션 김수진 기자 soojin@donga.com
김호 더랩에이치 대표 조직커뮤니케이션 전문가
순간 나는 살짝 눈썹이 올라갔다. 동의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던 것 같다. 기자 생활을 하다가 기업으로 이직하여 주요 요직을 거친 한 대기업 팀장과의 식사 자리에서 들은 이야기였다. 하지만 그와 이야기를 나누면서 눈썹은 내려왔고, 점차 공감을 하게 되었다. 그때 대화가 그 후에도 머릿속을 맴돌았다. 몇몇 기자를 상대로 ‘취재’도 해보았다. 기업이 신문사로부터 배울 것이 있다는 말에 지친 나날을 보내는 기자들도 처음에는 믿지 못하겠다는 표정이었지만 이내 몇몇 부분에서 고개를 끄덕였다. 기업에서 생각해볼 만한 부분 몇 가지를 들어보자.
최근 삼성이 대대적으로 조직문화를 혁신하기 위해 직급체계를 단순화하고 수평적 조직을 만들겠다고 발표했다. 수년 전부터 다른 기업에서도 수평적인 조직을 만들고자 직책을 없애고 “○○님”이라고 부르는 시도를 해온 바 있다. 하지만 이러한 시도가 성공적이었다는 이야기보다는 오히려 외부와 일을 할 때, 명함의 직책이 사라짐으로 해서 불편함을 겪는다는 불만이 더 많이 들렸다.
‘신문사는 수평적 조직일까’라는 것에 대해 의문이 들 수 있다. 호칭만 바꾼다고 해서 문화가 바뀌지는 않는다. 신문사의 또 다른 측면을 들여다보자.
기자 하면 어떤 생각이 드는가. 고분고분한 사람의 이미지와는 반대일 것이다. 기자가 되고자 하는 사람들은 자기주장이 강하고 비판의식이 있으며 할 말은 하는 타입인 경우가 많다. 조화를 중시하는 집단주의 사회인 우리는 이런 ‘모난 사람’을 배척하는 경우가 많다. 신문사에도 위계질서가 있지만 기업과 신문사의 회의문화는 다르다. 신문사에서는 적어도 기업보다는 참석자들이 할 말은 할 수 있는 분위기이다. 리더 혼자서 ‘주욱’ 이야기한 후 마치는 분위기는 아니라는 말이다.
우리 사회에서 각자의 개인성(individuality)을 살려내는 것이 사회의 민주주의 발전과 개인의 행복 증진을 위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부모와 선생, 상사와 선배 앞에서 우리는 자기 의견을 제대로 말하지 못하고 살아왔다. 조화와 순종 콤플렉스에서 벗어날 때가 되었다. 처음 내게 이야기를 들려준 팀장은 오너 회장에게도 할 말은 하는 성격이다. 팀원들에게도 자기 목소리를 확실히 내도록 장려하고, 형식적인 회의는 거부한다.
신문사에서 기자 한 사람은 일종의 1인 기업이다. 자기가 맡은 분야에서 처음부터 끝까지 자신이 책임을 지고 결과물을 만들어 내고 개인의 역량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아무리 신참 기자라 하더라도 특종을 ‘물어오면’, 그 기사는 1면에 그 기자의 이름으로 실릴 수 있다. 기업에서 이런 일이 가능할까. 보고 단계를 거치면서 신참 직원의 이름은 보고서 어느 한구석에서나 찾을 수 있을까? 아직도 주말 행사라는 이름으로 직원들의 개인 생활을 무시한 채 동원하고 때로는 과로사하는 사회에서 상사나 조직이 직장인을 1인 기업처럼 대해 주리라는 것은 너무 큰 기대일지 모른다. 그래도 직장인은 조직 내에서, 또 자신의 삶에서 점차 자신의 목소리를 찾아내고 밝힐 방법을 연대하며 찾아가야 한다.
김호 더랩에이치 대표 조직커뮤니케이션 전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