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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살배기 이승현 ‘오리온 두목’ 우뚝

입력 | 2016-03-30 03:00:00

KCC 격파 일등공신… 최우수선수에… 24cm나 큰 거인 하승진 완벽 방어
고비마다 3점포로 공격 활로 뚫어… 패기로 팀 분위기 메이커 역할도




올 시즌 프로농구 정규시즌에서 3위를 차지했던 오리온이 챔피언결정전에서 정규시즌 1위 KCC를 꺾을 수 있었던 데는 이승현(24·197cm)의 활약이 절대적으로 컸다.

이승현은 자신보다 신장이 24cm가 큰 국내 최장신센터인 KCC 하승진(221cm)을 골밑에서 완벽히 막아 냈다. 지난해 아시아선수권에서 이란 센터 하메드 하다디(218cm)를 수비했던 이승현은 “하다디를 상대한 경험을 살려 기술로 수비하는 요령을 연구했다”고 말했다. 하승진은 이승현의 수비에 막혀 챔피언결정전에서 경기당 평균 득점이 8.7점에 그쳤다.

이승현은 공격에서도 고비 때마다 정확한 3점슛을 림에 꽂아 넣으며 공격의 활로를 뚫었다. 공수에서 맹활약을 펼친 이승현은 기자단 투표 87표 중 51표를 얻어 챔피언결정전 최우수선수(MVP)에 선정됐다. 이승현은 “센터를 맡기에는 키가 작다는 말 때문에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다. 나보다 키가 큰 선수를 훌륭히 막을 수 있다는 것을 보여 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이승현은 하승진을 수비하느라 경기가 끝나면 녹초가 됐다. 이 때문에 이승현의 체력은 챔피언결정전 내내 오리온의 가장 큰 걱정거리였다. 오리온 관계자는 25일 챔피언결정전 4차전이 끝난 뒤 “이승현이 지치기 전에 챔피언결정전을 끝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7전 4승제의 챔피언결정전에서 오리온이 3승 1패로 앞선 상황이지만 이승현의 체력이 고갈돼 부진에 빠질 경우 우승을 장담할 수 없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주위의 우려와 달리 이승현은 정신력으로 위기를 극복했다. 26일 이승현은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코트 위를 늠름하게 걸어가는 사진과 함께 “끝까지 최선을 다해서”라는 말을 남겼다. 체력 저하로 응급실에서 링거를 맞기도 했던 그는 “‘내가 힘들면 상대방은 더 힘들 것이다’라는 생각으로 최선을 다했다”고 말했다.

이승현은 패기 넘치는 모습으로 팀 분위기를 끌어올리는 데도 앞장섰다. 슛을 성공시킨 뒤 크게 환호하거나, 동료들과 열정적인 세리머니를 한 것도 모두 팀 분위기를 끌어올리기 위한 계산된 행동이었다. 이승현은 “고려대 재학 시절에 많은 결승전 무대를 치르면서 큰 경기에서는 열정적인 모습으로 팀의 사기를 끌어올리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말했다.

‘오리온의 두목’으로 우뚝 선 이승현은 신인이던 지난 시즌 “이제는 고려대의 ‘두목 호랑이’가 아닌 ‘한국 프로농구의 두목’이 되고 싶다”고 포부를 밝혔다. 부모님의 결혼기념일에 MVP에 선정돼 기쁨이 더했던 그는 “한국 프로농구 두목이라는 꿈에 한발 더 다가선 것 같아 기쁘다”고 말했다.

고양=정윤철 기자 trigger@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