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레이션 김수진 기자 soojin@donga.com
이기호 소설가
그는 어젯밤, 사소한 사고를 저지르고 말았다. 시내 변두리 한 물류센터에서 일하는 그는, 오랜만에 직장 동료들과 회식을 했고, 이른 회식이 끝난 후 조금 불콰해진 얼굴로 마을버스를 기다리다가 느닷없이, 거의 충동적으로, 바로 길 건너편에 있는 대형 마트 안으로 휘적휘적 걸어 들어갔다. 일주일 전이었던가, 아내와 아들과 장을 보러 나왔다가, 아들이 레고 코너 앞에 오랫동안 서 있던 것이 기억났다. 왜? 이거 갖고 싶니? 그는 장난스럽게 아들의 어깨를 퉁 치며 물었다. 그러곤 거의 동시에 아들이 보고 있던 레고 박스의 가격표를 바라보았다. 29만9000원. 그는 좀 당황했지만, 당황한 모습을 들키지 않으려고 일부러 두 다리에 힘을 주었다. 아들이 그의 얼굴을 바라보며 웃었다. 이건 거의 우리 집 한 달 월센데? 아들은 그러면서 퉁, 제 어깨로 그의 허리께를 부딪쳐왔다.
솔직히 그렇게 지나가버린 일인 줄 알았다. 그러니까 그 자신도 어젯밤, 자신의 행동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던 게 맞았다. 그는 그 레고 박스를 신용카드로 구입하면서도 어쩐 일인지 조금 화가 나 있었다. 머릿속에선 자꾸 반복, 반복, 이라는 단어가 떠올랐다. 봄이 다시 돌아오고, 또 봄이 돌아오고, 자신의 아버지가 그랬던 것처럼 그 또한 그렇게 버스를 타고 출퇴근을 할 것이고, 늘 집세와 생활비를 마련하느라 진땀을 뺄 것이며, 어쩌다가 봄 점퍼 한번 구입할 때마다 이것저것 많은 것을 고려할 테고, 그러다가 다시 어느 봄이 돌아오면 허망하게 몸이 아파오겠지…. 그는 계속 그런 생각을 했던 것 같다. 기껏 아들에게 레고 하나 사주면서 그런 생각을 반복하는 자신이 못 미더워, 그는 스스로에게 더 화를 냈다.
그들은 횡단보도를 건너 걷기 시작했다. 정후야, 아빠 밉지? 그가 아들에게 물었다. 그러게, 왜 이런 걸 사왔어? 내가 언제 사달라고 했나…. 그는 아들의 발걸음 속도에 맞춰 걸었다. 그냥 너한테 사주고 싶었던 거지, 뭐…. 그의 아들은 말하지 않았다. 그래도 봄이라서 걸어가도 안 춥다, 그치? 그가 그렇게 말한 순간, 그의 아들이 훌쩍훌쩍 울기 시작했다. 뚝뚝, 눈물방울이 레고 박스 위로 떨어졌다. 아들은 레고 박스 위에 떨어진 눈물방울을 계속 훔쳐내며, 그러면서도 울음을 멈추지 않았다. 그는 당황해서 어쩔 줄 몰랐지만, 그러면서도 또 한편, 어쩐지 이 풍경 자체가 낯익어, 그 자리에 가만히 서 있기만 했다. 그 또한 그렇게 울었던 봄밤이 있었다.
이기호 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