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수결원리 反하는 선진화법… 국회의장의 법안직권상정을 국가비상사태 등으로 제한
‘평상시’엔 아무것도 못하게 막아… 계엄 선포할 화급한 상황이면 입법으로 문제해결 가능할까
지킬 의사도 없이 만든 법은 입법권에 대한 모독이다
이미현 객원논설위원·연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살다 보면 이렇듯 상반되는 얘기를 하고 있음에도 어느 한쪽이 꼭 틀린 것은 아닌 경우가 종종 있다. 서로 추구하는 가치가 다르기 때문이다. 또한 소수의 선각자만이 예견 가능한 상황이 존재하는 경우에는 오히려 소수 의견이 더 옳은 의견일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의견이 대립하는 상황에선 결론을 내리기에 앞서 서로 다른 목소리에 진지하게 귀를 기울이는 시간을 갖는 것이 반드시 필요하다. 하지만 충분한 대화를 나누었음에도 여전히 생각이 평행선을 달리고 있다면 그 문제는 결국 다수결로 해결할 수밖에 없다. 중간 지점에서 만날 수 없어 어차피 한쪽으로 뛸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면 보다 많은 사람들이 원하는 방향으로 향해야 하지 않겠는가? 다수결은 생각이 서로 다른 사람들이 평화롭게 공존하기 위한 가장 현실적 해결 방안이다.
얼마 전 테러방지법과 관련하여 야당 의원들이 우리나라 헌정 사상 최장 필리버스터 기록을 경신하는 상황이 발생하자 2012년 개정 국회법(국회선진화법)에 대한 논란이 더욱 뜨거워졌다. 작금의 상황에서 보는 것처럼 국회선진화법이 도입한 필리버스터 제도는 적어도 신속하고 효율적인 입법에는 도움이 안 되는 제도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필리버스터와 다수결의 원칙은, 동전의 앞뒷면처럼 서로 다른 방법으로 민주사회를 지탱하는 요소라고 생각한다. 무제한 토론을 하던 중 회기가 종료되면 해당 법안은 자동으로 다음 회기의 첫 본회의 표결에 부쳐지므로 필리버스터만으로 다수당이 지지하는 법안의 통과를 완전히 막을 수는 없다. 단지 다음 회기까지 결정을 미룰 수 있을 뿐이다. 하지만 이렇게 얻어낸 다음 회기까지의 냉각기간은 소수당이 반대 여론을 형성할 수 있는 소중한 기회다. 즉, 필리버스터의 비효율은 다수의 횡포를 막는 안전장치를 확보하기 위해 치르는 대가인 셈이다. 그 대신 그러한 기회가 주어졌음에도 불구하고 다음 회기까지 주도적인 반대 여론 형성에 실패하였다면, 해당 법안은 다수의 국민이 선택한 다수당의 의사에 따라 처리되는 것이 다수결을 기본 원칙으로 하는 민주사회의 정의다.
사인 간에 작은 합작회사를 설립하는 경우에도, 회사의 의사결정은 과반수 찬성이 원칙이며, 50 대 50 투자라면 의사결정의 교착상태(deadlock)를 해결하기 위한 방안을 합작계약서에 규정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국회선진화법은 교착상태가 발생하더라도 ‘천재지변·전시·사변 또는 이에 준하는 국가 비상사태’를 제외하고는 아무것도 하지 말자고 규정한 합작계약서인 셈이다.
그래도 명색이 국민의 대표인데 이런 황당한 내용이 그대로 지켜지리라고 믿고 법을 만들 만큼 판단력이 부족할 리는 없다. 법은 우리가 지켜야 하는 사회규범 중에서도 특히 강제력이 부여된 규범이다. 지킬 의사가 없이 법을 제정하였다면, 이는 입법권에 대한 모독이다.
이미현 객원논설위원·연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