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세영 지지하는 사람 손들어.”
눈을 감고 반장을 뽑겠다는 것이었다. 열네 살 어린 나이였지만 이건 아니라는 생각과 함께 뭔가 석연치 않았다. 그러나 선생님께 건의해볼 틈도 없이 선거는 일사천리로 진행되었고 결국 나는 얼떨결에 눈을 감은 채 다른 친구가 반장으로 당선되었다는, 나로서는 검증할 길 없는 선생님의 결과 발표를 들어야 했다.
선생님은 그러지 말았어야 했다. 우리로 하여금 눈을 똑바로 뜨고 민주적인 선거의 과정과 절차를 지켜보고 결과를 받아들이도록 가르쳤어야 했다. 내가 충격을 받은 까닭은 반장이 되지 못해서가 아니라 도무지 그 과정과 결과에 승복이 되지 않아서였다. 우리의 반장을 뽑는데 왜 선생님이 개입하여 우리를 모두 눈감은 장님으로 만들어 버렸는지 그걸 납득할 수 없어서였다.
오랜 세월 가슴에 묻어둔 채 애써 잊고 지낸 이 일이 최근 불쑥 다시 떠오른 것은 선거철이 다가와서일까. 어른이 되었는데도 선거란 것이 여전히 눈 뜨고 봐주기 어려운 지경이다. 그러나 그렇더라도 눈을 감지 말았으면 한다. 풀지 못한 수학문제처럼 그때의 일이 수십 년이 지나도록 내 가슴 한구석에 커다란 물음표로 남아 있는 것은 그때 내가 눈을 감았기 때문이다.
이번 봄, 우리 모두 어떤 이유로든 눈을 감지 않았으면 좋겠다. 중학교에서 반장을 뽑는 선거도 아니고 나라를 움직이는 국회의원을 뽑는 일이 아닌가.
윤세영 수필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