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남과 여’에서 핀란드 여행 뒤 일상으로 돌아온 상민(전도연)과 기흥(공유)이 KTX 특실에서 밀회하고 있다.
이승재 기자
Q. 영화의 의도가 불순합니다. 유부녀 유부남이 남편 아내 제쳐두고 몸을 섞습니다. 아무리 미적으로 그려진들 이게 무슨 사랑입니까? 불륜이지.
아, 이건 잘못입니다. 불륜의 세계는 우주처럼 깊고 광활합니다. 불륜은 단지 결핍에서 비롯되지 않습니다. 마땅한 이유가 없어요. 그게 바로 불륜이 멸종되지 않는 이유이지요. 한국 불륜 영화의 최고봉 ‘정사’(1998년)를 보세요. 이미숙은 멋진 집에 잘나가고 자상한 남편에다 똑똑한 아이까지 두고 있어요. 상처도 없고 결핍도 없습니다. 근데 여동생의 약혼자인 이정재와 금지된 사랑에 빠지죠. 아이의 학교 지구과학실에서도 정사를 벌여요. 이게 진정한 불륜의 세계입니다. 밑도 끝도 없지요. “우리 섹스해요. 당신, 나 좋아하고 내가 당신 좋아하잖아요. 뭐가 더 필요해요”라는 전도연의 대사야말로 불륜의 본질을 제대로 드러내는 명대사입니다.
Q. 이 영화에서도 그렇듯 불륜영화에는 대부분 먹고사는 데 전혀 지장 없는 남녀가 나옵니다. 전도연은 잘나가는 신경정신과 의사 남편을 두고 한강변 멋진 아파트에 사는 패션 디자이너입니다. 공유는 유명 건축가에다 부잣집 사위죠. 이렇게 ‘등 따시고 배부른’ 유부녀 유부남의 사랑이 진짜 사랑일까요? 리얼리티가 떨어집니다.
A. 아닙니다. 먹고살 걱정이 없는 사람의 사랑이야말로 절실할지 모릅니다. 생각해 보세요. 아이 과외비 35만 원(교재비 포함)이 걱정되고 주택담보대출이 걱정이면 불륜에 몰입할 수 있을까요. ‘부자에겐 진짜 사랑이 없다’는 말은 부자가 아닌 사람들이 자기 위안으로 삼으려는 말 아닐까요. ‘등 따시고 배부른’ 인간들이야말로 온종일 사랑, 사랑, 사랑만 생각하니까요. ‘탑골공원 박카스 아줌마의 에버래스팅 러브’ 같은 영화가 만들어지지 않는 것은 바로 이런 이유에서입니다. 까만 프라다 백을 들고 공유가 기다리는 특급호텔 객실을 향해 미친 듯이 뛰어가는 전도연의 마음에도 절실함은 있는 것입니다.
Q. 이상합니다. 결국 남편을 뿌리치고 ‘스위트 홈’을 뛰쳐나온 전도연은 공유에게 자신의 남은 인생을 던지려 합니다. 하지만 놀랍게도 바로 이때, 공유는 돌아서서 자신의 가정으로 돌아가지요. 이건 배신 아닙니까?
불륜남과 불륜녀는 위기를 관리하는 메커니즘이 다릅니다. 여자는 이미 마음이 떠난 남편을 등지고 지금의 사랑에 충실한 것이 불륜이라는 ‘비정상’을 ‘정상화’하는 길이라고 믿습니다. 그래서 불륜 초기엔 머뭇거리지만 점차 과감해지지요. 반면 남성은 초기엔 들이대지만 갈수록 새가슴이 됩니다. 가정이 풍비박산 망가지고 개망신 당하기 전에 조용히 불륜을 접고 새로운 불륜의 기회를 기약하는 방식으로 비정상을 정상화하려 하지요. “아내와 사이가 멀어진 지 오래다. 곧 이혼하겠으니 기다려 달라”는 불륜남치고 진짜 이혼하는 남자 봤습니까? 그래서 남자는 진상입니다.
이승재 기자 sjd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