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택동 정치부 차장
새누리당의 공천 갈등이 한창 진행되던 이달 중순 중립 성향인 여권의 한 원로 인사는 “서로가 서로를 물어뜯는 것을 보니 마음이 착잡하다”며 인상을 찌푸렸다. 이런저런 인연이 있는 사람들이 일부는 공천을 받고, 일부는 ‘컷오프’됐으며, 일부는 탈당해 무소속으로 출마하는 것을 보며 심란했을 것이다.
인기 드라마 ‘태양의 후예’보다 재미있었다는 여당의 공천 막장극은 일단 봉합됐다. 하지만 눈 뜨고 못 볼 지경으로 싸운 공천 전쟁의 주역들은 모두 패자(敗者)가 됐다. 승자는 없었다.
6명의 친박(친박근혜)계 후보 공천을 놓고 벌인 ‘옥새 투쟁’에서 3 대 3의 성적을 거둔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는 결기를 보여줬다는 평가와 함께 ‘결국 또 물러섰다’는 지적도 받고 있다. 김 대표가 정치 생명을 걸겠다던 상향식 공천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 비박(비박근혜)계 내에서도 “자기 사람만 챙겼다”는 비판이 나온다. 청와대와의 틈은 더 벌어졌다. 앞으로 대권 가도가 순탄치 않아 보이는 이유다.
유 전 원내대표는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대선주자급으로 자리매김했지만 승자라고 할 수는 없다. 결국 새누리당을 탈당했고, 총선에서 이겨도 다시 돌아가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보금자리를 잃은 그는 앞으로 정치활동에 많은 제약을 받게 될 것이다.
이한구 공천관리위원장과 친박계도 상처를 입긴 마찬가지다. 공천 과정에서 보여준 ‘친박 패권주의’에 대한 여론의 평가는 부정적이다. 공천의 칼을 휘두른 만큼 큰 책임도 뒤따른다. 그러면서도 그들이 ‘진박(진짜 친박)’이라며 밀었던 일부 후보는 출마조차 못했다.
여당의 그늘이 워낙 커 눈에 덜 띄었을 뿐 야당의 사정도 다를 게 없다. 더불어민주당에서는 비례대표 공천 논란으로 김종인 비상대책위원회 대표가 사퇴 직전까지 갔고, 국민의당은 낙천한 후보가 도끼까지 들고 나섰다.
그래도 정치를 심판할 사람은 국민밖에 없다. 최선이 없으면 차선을, 차선도 없으면 차악이라도 선택하는 게 정치를 바로잡을 수 있는 유일한 길이다.
장택동 정치부 차장 will71@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