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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세돌 “동료기사와 감정 나눈 수담 즐거워”

입력 | 2016-03-31 03:00:00

‘알파고와 대결’ 보름만에 ‘인간계’로 돌아온 이세돌
김지석 9단 꺾고 맥심배 4강 진출… “알파고戰 후 감각보다 수읽기 집중”




“승패를 떠나 오랜만에 동료 기사와 감정을 나누며 수담(手談·바둑의 별칭)을 가져 즐거웠습니다.”

인공지능 바둑 프로그램 알파고와의 대결이 끝난 뒤 보름 만에 인간계로 돌아온 이세돌 9단(33)이 화려한 복귀식을 치렀다. 이 9단은 30일 제17기 맥심커피배 입신최강전 8강전에서 김지석 9단(27)을 상대로 알파고와의 대결 이후 처음으로 공식 대국을 가졌다.

서울 성동구 마장로 한국기원에서 열린 이날 대국에서 이 9단은 돌을 가린 결과 백을 잡게 됐다. 이 9단은 알파고와의 대국 때처럼 짙은 감색 양복에 하늘색 와이셔츠를 입고 나왔다. 이 9단의 ‘대국 의상’이란 말이 나올 정도로 즐겨 입는 옷. 대국 도중 오른손 검지를 빠르게 까딱거리며 계가하는 것이나 마음에 들지 않을 때 고개를 좌우로 젓는 행동도 예전과 다를 바가 없었다.

이 9단은 이날 우변 전투에서 상대의 약점을 적극 공략해 우세를 확보하며 하변 흑 말을 잡아 172수 만에 백 불계승을 거뒀다. 한동안 심각한 표정을 짓던 이 9단은 중반 무렵 우세가 확실해지자 가벼운 손길로 돌을 내려놓았다.

이 9단은 대국 후 “알파고 이후 첫 대국이어서 제대로 집중할 수 있을지 걱정했는데 내용이 좋은 바둑을 둬 만족한다”며 “김 9단의 컨디션이 좋지 않았던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알파고와의 대결 이후 자신의 바둑에 변화가 있었는지에 대한 질문에 “내 실력에 큰 차이가 생긴 것 같지는 않다”며 “다만 그동안 감각에 의존해 당연하게 여겼던 수들에 대한 재검토와 정확한 수읽기가 필요하다는 점을 느꼈고 그렇게 두려고 노력했다”고 말했다.

그는 또 “알파고와의 대결은 경험하기 힘든, 뜻깊은 대국이었고 대국 방식이 부당했다거나 사전 정보를 주지 않았다거나 하는 세간의 지적에는 동의하지 않는다”며 “바둑은 알파고, 인간 누구와 두든지 똑같은 바둑일 뿐”이라고 말했다.

그는 알파고와의 재대결과 관련해선 “어려운 문제이며 알파고가 계속 발전한다면 한 판 이기기가 쉽지 않을 것”이라며 부정적 의사를 내비쳤다. 이 9단은 다음 달 하순 4년 만에 한 번씩 열리는 세계대회인 응씨배에 출전한다. 그동안 조훈현 서봉수 유창혁 이창호 최철한 9단이 우승한 바 있다. 이 9단은 “응씨배 우승을 바라지만 지금은 최선을 다하겠다는 말밖에 더 드리기 어렵다”고 말했다.

한편 이 9단은 최근 편당 3억∼4억 원의 출연료를 받고 여러 편의 광고를 찍은 것으로 알려졌다.
 
서정보 기자 suhcho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