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희창 경제부 기자
지난달 28일 페이스북에 한 장의 사진이 올라왔습니다. 하얀색 웨딩드레스를 입은 신부와 함께 티셔츠 차림의 건장한 남성이 문신이 새겨진 오른 팔뚝을 치켜든 채 포즈를 취하고 있습니다. 다른 한편에는 또 다른 남성이 ‘블랙파워(Black Power)’라는 글자가 새겨진 검은색 깃발을 들고 섰지요. 블랙파워는 1970년대에 만들어진 뉴질랜드의 유명한 갱단입니다.
3일 동안 이 사진은 730번이 넘게 공유가 됐고 ‘좋아요’ 등도 6000개에 이르렀습니다. ‘어떻게 이런 사진을 찍게 됐냐’는 문의가 이어지자 사진을 올린 사진작가 레베카 인스 씨(31)는 댓글로 촬영 당시의 상황을 전했습니다.
히코이는 뉴질랜드 원주민 마오리족 말로 ‘가두 행진’으로 보통은 몇 주씩 걸리는 긴 여행을 뜻합니다. 블랙파워는 백인 갱단 등에 맞서 조직된 단체이기도 하지요. 이런 배경 탓인지 몇몇은 인종 간 장벽을 허무는 데 도움이 되는 사진이라며 열광했습니다. 한 남성은 ‘올해의 사진이다. NZH(뉴질랜드 현지신문인 뉴질랜드헤럴드)의 1면에 실려야 할 파괴력 있는 이미지로 인종 간 장벽을 해소하는 데 있어 많은 것들을 말해준다’고 적었습니다. 뉴질랜드 고유의 정서를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외국인으로서 이런 반응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판단이 안 됩니다. 블랙파워는 마약 제조 및 판매에도 깊은 관련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기 때문입니다.
인스 씨는 BBC와의 인터뷰에서 “두 그룹이 우연히, 같은 시간에, 같은 장소에, 자신들만의 특별한 이유를 갖고 모였다. 그리고 그것이 아주 놀라운 특별한 사진을 만들어 냈다”고 말했습니다.
인스 씨의 말을 떠올리며 고개를 가로젓는 제 모습을 보며 어느새 ‘낭만’을 잃어버린 것은 아닌가 뒤돌아보게 됩니다. 그래도 전 웨딩촬영 때 갱단을 만나게 돼도 절대 함께 사진을 찍자는 말은 하지 않으렵니다.
박희창 경제부 기자 ramblas@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