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영훈 수석논설위원
당파 싸움을 일삼았던 무능한 대한민국 국회, 그중 19대는 역대 최악이다. 새 술을 새 부대에 담아야 할 20대 국회의 앞날도 캄캄하다. 공천부터 ‘×판 5분 전(유인태 의원)’이었다. 목욕재계(齋戒)하고 정화수 떠놓고 널리 인재를 모으지는 못할망정, 당권(黨權) 대권(大權)에 눈이 뒤집혀 최악의 공천을 했다.
국정의 발목을 잡는 국회를 쇄신하리라 기대하기 힘들다. 그러니 나라의 미래도 어둡기만 하다. 두 사람이 당선되면 당파를 떠나 나름의 역할을 하기를 기대할 뿐이다. 더민주당 김부겸은 각종 여론조사에서 김문수 전 경기지사에 비해 10%포인트 넘게 앞선다. 반면 정운천은 더민주당 최형재 후보를 박빙의 차로 맹추격한다.
한 TK 정치인은 “몇백 표 차로 (김부겸이) 분루를 삼킬 것”이라 했다. 나는 그를 20년 넘게 알고 지냈다. 정치판서 40년 넘게 여야를 넘나든 그의 분석력은 혀를 내두를 정도다. 그러나 그 예측이 틀리는 쪽에 베팅하겠다. 이정현 의원을 호남은 이미 당선시켰다. 김부겸과 김문수의 건곤일척(乾坤一擲) 승부에 대구의 자존심이 걸려 있다.
‘쌍발통’ 정운천은 실패 가능성이 더 높다. 정운천은 7년 전 전주로 이사가 국회의원 및 전북도지사 선거에 연거푸 도전했으나 쓴맛을 봤다. 쌍발통은 야당이 지역 정치를 독점하니 발전이 정체된다는 문제의식이 출발점이다. 쌍발통 자전거처럼 여당 의원도 배출해야 지역 고충을 해결할 수 있다는 논리다.
상주와 고창, 두 사람의 향리는 선비문화가 깃든 곳. 그러나 둘의 인생역정은 야생마처럼 순탄치 않았다. 80년 서울의 봄, 서울대 정치학과에 복학한 김부겸은 서울대 아크로폴리스의 명연설로 이름을 떨쳤다. 그때의 사자후(獅子吼), 진보정치인으로 정계에 입문해 여당으로, 또 야당으로 옮긴 정치역정보다 김부겸의 인생 절정기는 학창 때다.
정운천은 고려대를 졸업한 30년 학사 농부였다. 뉴질랜드 키위를 참다래로 작명해 ‘농업계의 이건희’로 통했다. 초등학교 교과서에도 신지식인 ‘참다래 아저씨’로 등장한다. 이명박 정부 첫 농림수산부 장관에 발탁됐지만 광우병 사태로 다소 억울하게 옷을 벗는다. 그때 수만 명 시위대가 모인 광화문광장에 대통령과 참모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겁 없이 달려간 강단을 지녔다.
최영훈 수석논설위원 tao4@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