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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횡설수설/고미석]서울에 DDP ‘우주선’ 선사한 하디드

입력 | 2016-04-02 03:00:00


공상과학영화에 나올 법한 은빛 우주선을 닮은 서울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 그 앞에서 외국인 리포터가 ‘아시아에서 가장 주목받는 관광지’라고 서울을 소개하는 순간, 거대한 DDP가 연기를 내뿜더니 공중으로 치솟아 사라진다. 지난해 미국의 한 매체가 이런 패러디 영상을 만들어 화제를 모았다.

▷복합문화공간 DDP를 설계한 자하 하디드는 이라크 태생의 영국 건축가다. 2004년 ‘건축계의 노벨상’인 프리츠커상을 여성 최초로 수상하고, 작년엔 권위 있는 영국왕립건축가협회상을 받았다. ‘건축계의 디바’이자 대중이 이름을 기억하는 스타 건축가인 하디드가 지난달 31일(현지 시간) 심장마비로 별세했다는 소식에 추모의 물결이 일고 있다. 올해 66세, 한창 무르익은 작품세계를 펼칠 나이라서 아쉬움이 더 크다.

▷옛 동대문운동장 자리에 들어선 DDP를 짓는 데 4840억 원이 들어갔다. 당초 서울시 계획예산의 2배였다. 돈도 돈이지만 ‘곡면 알루미늄’을 활용해 만든 구불구불한 곡선과 매끄러운 외관의 디자인에 여론이 엇갈렸다. 주변 경관과 안 어울리고 실용성도 떨어진다는 비판이 나왔다. 2014년 3월 개관하면서 반전이 이뤄졌다. MBC ‘무한도전’, SBS 드라마 ‘별에서 온 그대’에 등장하는 등 ‘불시착 우주선’에서 서울의 랜드마크로 거듭났다. 패러디 영상은 물론이고 뉴욕타임스 선정 ‘2015년 꼭 가봐야 할 52곳’에 소개되면서 서울에 미래도시 이미지를 선사한 것이다.

▷이제껏 누구도 상상하지 못한 것을 현실로 만들어낸 하디드의 건축은 논란의 중심에 서곤 했다. 우리가 늘 접하는 성냥갑 같은 건물이 아니라 들쭉날쭉한 유기적 형태의 전위적 건물인지라 공정은 까다롭고, 건축비용도 많이 들었다. 그럼에도 하디드는 매혹의 곡선을 살려낸 설계로 도시의 풍광을 단숨에 업그레이드한 건축가로 인정받았다. 비유럽지역 출신 여성이란 약점을 넘어 남성 중심의 건축계에서 우뚝 선 하디드. 결혼하지 않은 그에겐 자식이 없지만 지구별 곳곳에 DDP를 비롯해 은하계에서 이사 온 듯한 매혹적인 건물을 남겨두고 떠났다.
 
고미석 논설위원 mskoh119@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