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김수철의 ‘젊은 그대’
김창기 전 동물원 멤버·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저와는 참 다른 어법으로 말하는, 윽박지르는 듯한 ‘세미나’는 재미없었습니다. 하지만 헤겔의 ‘정반합’은 참 재미있었습니다. 아직도 제 삶의 나침반 중의 하나가 되어 주고 있죠.
헤겔이 말하는 이상적인 사회를 위해, 공동체를 위한다는 명분하에 행해지는 억압과 강요를 부정하는 삶, 누구에게 의존하지 않는 자유로운 삶을 살려면 모두 성숙한 어른이 되어야 합니다. 그런데 이 세상은 그렇지 못하죠. 내가 ‘어른’이니까, 어린 사람들을 잘 가르쳐 주려고 하면, 억압하고 강요한다고 두 눈을 부릅뜹니다.
결론은, 나 자신이 언제나 부족하고 모자라다는 자기 부정, 남의 티끌보다 내 들보를 봐야 한다는 당연한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럴 수 없다면 최소한 김건모의 노래처럼 ‘입장 바꿔 생각해봐’야 하는 것입니다. 나아가 내가 받고 싶은 만큼 베풀어줄 정도로 성숙해져야 한다는 것인데, 참 쉽지 않습니다.
그래도 그 당시에는 그런 것들이 가능할 것 같았습니다. 우린 태양같이 젊었고, 이제 막 잠에서 깨어나 의식을 찾았고, 우린 사랑스러웠으니까요. 물론 저를 사랑스럽다고 생각해준 사람은 저희 부모님밖엔 없었지만 말입니다. 그래도 이 노래를 부르며 생판 처음 보는 아가씨와 어깨동무를 하고 발을 구르고 있었을 때엔, 그녀가 저를 그렇게 봐줄지도 모른다는 착각을 했었죠.
문제는, 가만히 살펴보면 제가 그 당시의 저에서 크게 변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저는 자유보다는 연결과 화합과 사랑을 더 원하고, 그러한 비이성적인 ‘달달한’ 것들이 저에게 행복을 가져다 줄 것이라고 믿고 있으니까요. 그런 ‘달달한’ 것들을 ‘애착이론’에서는 따뜻함, 일관성, 민감성, 관계개선 능력이라고 합니다. 좋은 부모, 좋은 친구, 좋은 선생님, 좋은 지도자의 조건이죠.
김창기 전 동물원 멤버·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