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선 후보 자녀들의 SNS 선거 지원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한 선거운동의 위력이 갈수록 막강해지고 있다. 하지만 정작 선거에 나선 후보들의 SNS 계정은 따분하기 그지없다. 4·13총선 후보로 등록한 944명의 평균 연령은 53.1세다. “기호 ○번 ○○○을 찍어 달라”는 후보들의 ‘온라인 글빨’은 서툴 수밖에 없다. SNS를 대신 관리해주는 캠프 관계자들 역시 후보의 숨은 매력을 알 리 없다. 후보를 잘 알고 SNS를 일상적으로 사용해온 2030 자녀들의 ‘SNS 효도’가 신풍속도로 자리 잡게 된 까닭이다. 후보 자녀의 온라인 선거전은 재치 있는 문구와 재능으로 후보를 전국구 스타로 만들어 주기도 하지만 때로는 후보에게 의도치 않게 불미스러운 스캔들을 안겨주기도 한다.
“느그 아부지 뭐하시노?”
더불어민주당 정기철 후보(대구 수성을)의 딸 효영 씨(23)는 지난달 20일부터 직접 그려 페이스북에 올리는 웹툰 제목을 이렇게 정했다. 야권 불모지인 대구에서 나고 자란 효영 씨가 상대적으로 인지도가 낮은 아버지를 친구들에게 알려주고 싶어서다. 첫 에피소드의 제목은 ‘정치 신인의 선거운동’이다. 온 가족이 정치 신인 아버지를 따라 동네 방방곡곡을 돌아다니며 명함을 돌리는 ‘가내수공업’을 재치 있게 그려냈다. 효영 씨는 “친구들에게 갑자기 정치 얘기를 꺼내기 쉽지 않아 최대한 쉽게 접근하려고 웹툰을 그렸다”면서 “아버지 선거운동을 도우며 경험하는 것들을 ‘썰’로 풀어보고 싶었다”고 말했다.
새누리당 전하진 후보의 딸 안나 씨가 3월 30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린 사진. 전안나 씨 페이스북
새누리당 박종희 후보의 딸 하영 씨가 3월 4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린 아버지 선거 지원 사진. 박하영 씨 페이스북
더불어민주당 금태섭 후보의 아들 중혁 씨가 3월 27일 말 모양 가면을 쓴 자신을 찍어 아버지 페이스북에 올린 사진. 금태섭 후보 페이스북
‘대놓고 자식 자랑’으로 유권자도 “좋아요”
후보보다 더 유명해진 자녀 스타도 있다. 팔불출 후보들의 SNS 자식 자랑이 누리꾼들의 이목을 끈 것이다.
더민주당 기동민 후보(서울 성북을)는 ‘인터넷 스타’인 아들 대명 씨를 SNS 모델로 내세웠다. 지난해 7·30 재·보궐선거에서 서울 동작을에 출마했던 기 후보는 당시 아들과 유세하는 사진을 페이스북에 올렸다가 준수한 아들의 외모 덕에 포털 사이트 검색어 순위 상위에 오르기도 했다. 이번 선거에도 어김없이 기 후보 캠프의 핵심 SNS 선거전략은 ‘훈남’ 아들이다. 기 후보는 지난달 25일에도 페이스북에 ‘#대놓고자식자랑’이라는 해시태그를 달아 아들 사진을 올렸다. 기 후보 측은 “대명 씨 사진을 페이스북에 올리면 평소보다 ‘좋아요’가 2배 이상 달린다”면서 “대명 씨를 사실상 SNS 모델로 쓰고 있는 셈”이라고 말했다.
더불어민주당 배재정 후보가 2월 28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린 아들 유경준 씨의 통기타 연주 동영상 캡처. 배재정 후보 페이스북
의도치 않게 SNS에서 자녀의 외모가 주목받으면서 후보까지 덩달아 회자되는 경우도 있다. 새누리당을 탈당해 무소속으로 출마한 유승민 후보(대구 동을)의 지난달 30일 선거대책위원회 발대식에 참가한 딸 담 씨의 미모가 카메라에 잡히자 사진이 SNS를 통해 급속도로 퍼졌다. 누리꾼들은 유 후보에게 ‘국민 장인’이라는 별명을 붙여 주면서 패러디 선거 벽보를 손수 만들어 SNS에 올리기도 했다.
아들딸 SNS 말실수에 발목 잡혀 ‘멘붕’ 오기도
자녀들의 SNS 활동은 사실 양날의 칼과 같다. 후보 자녀의 SNS 발언은 캠프의 메시지 관리를 거치지 않을뿐더러 SNS 특성상 순식간에 번져나가 선거운동에 치명타를 줄 수도 있기 때문이다.
2014년 지방선거에서 서울시장 후보로 나선 새누리당 정몽준 전 대표 막내아들의 ‘국민 미개 발언’ 파문이 대표적인 사례다. 당시 18세이던 정 전 대표 아들은 세월호 참사 이틀 후인 2014년 4월 18일 “(세월호 유가족들이) 대통령에게 소리 지르고 욕하고 국무총리에게 물세례 뿌리잖아. 국민 정서 자체가 미개하다”는 글을 올렸다. 선거를 한 달여 앞둔 때였다. 정 전 대표는 3일 뒤 “막내아들의 철없는 짓에 아버지로서 죄송하다”며 사죄문을 냈지만 지지율 급락을 막을 수는 없었고 결국 낙선했다.
당시 서울시교육감 후보로 출마했던 고승덕 변호사에게도 딸이 페이스북에 올린 폭로글이 대형 악재였다. 이혼한 전처 사이에서 난 딸은 투표를 5일 앞두고 가족사를 언급하며 “자녀를 돌보지 않은 아버지는 교육감 자격이 없다”는 내용의 글을 공개했다. 직전까지만 해도 지지율 1위를 달리던 고 변호사는 결국 낙선의 고배를 마셔야 했다.
통제가 불가능한 후보 자녀의 거친 언어로 선거 판세에 불똥이 튈까 봐 캠프 관계자들이 안절부절못하는 분위기도 감지된다. 2014년 7·30 재·보궐선거 때는 경기 수원정(영통)에 출마했던 더민주당 박광온 의원의 딸이 선거 캠프 몰래 만든 트위터 계정이 화제였다. 톡톡 튀는 언행으로 박 의원을 알리는 데 일등공신이었지만 캠프 관계자는 박 의원 딸이 사고라도 칠까 봐 계정 폐쇄를 요청하기도 했었다. 이번 총선에서 재선을 노리는 박 의원 캠프에서는 지난 선거 당선 후 계정을 폐쇄한 딸이 활동을 재개할까 봐 노심초사하고 있다는 후문이다.
이렇다 보니 ‘SNS 효도’의 효과와 한계를 바라보는 시선은 엇갈린다. 장덕진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는 “SNS를 통한 움직임은 연결-공감-연대라는 3단계 과정을 거치게 되는데 정몽준 전 대표 아들 사례 등은 연결이 공감으로 이어지지 못한 채 반발심만 불러일으킨 사례”라면서 “젊은층의 공감을 불러일으키지 못한다면 후보 자녀들의 SNS 활동도 선거에 큰 도움이 되지 못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반면 유승찬 스토리닷 대표는 “유권자들은 자녀가 SNS 선거운동을 통해 부모를 이해하는 감성적 울림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는 편”이라며 “부정적 파장만 없다면 후보 인지도를 끌어올리는 데 기여하는 것 같다”고 분석했다.
차길호 기자 kil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