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학교 야구부 폭력에 선수 꿈 접은 명현이
키 158cm에 몸무게 52kg. 지난달 서울 강서구의 한 카페에서 만난 명현이(가명·15)는 체구가 작았다. 얼마 전까지 야구선수로 활동했던 중학교 3학년 같지 않았다. 주눅 든 표정을 짓고 있던 명현이는 야구를 하면서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을 묻자 비로소 웃었다. 내야 수비를 할 때 7타자 연속으로 자신에게 공이 왔고 모두 범타로 돌려세운 것이 제일 자랑스러운 기억이라고 말했다.
초등학교를 다니며 리틀야구단 생활을 시작한 명현이는 2년 전 경기 파주시의 한 중학교 야구부로 전학하면서 야구선수의 꿈을 키웠다. 하지만 얼마 전 꿈을 접었다. 야구부 친구들에게 당한 따돌림과 폭력 때문이었다는 게 명현이의 얘기다. 하지만 다른 야구부원 학부모들의 주장은 다르다. 야구부에서 명현이가 후배들을 괴롭혔고 이 때문에 친구들에게 폭행을 당했다는 것. 야구도 원래 스스로 그만두려 했다고 한다. 도대체 명현이에겐 무슨 일 있었던 걸까.
명현이의 아버지(48)와 어머니(43)는 아들이 괴롭힘과 폭력에 시달리고 있다는 얘기를 올 2월에야 들었다. 학교 야구부가 베트남 전지훈련을 다녀온 뒤였다. 명현이는 야구를 그만두겠다고 말했다. 2014년 말부터 친구들에게 따돌림과 놀림을 당하고 지속적으로 폭행당했다고 털어놓았다. 충격을 받은 명현이의 부모님은 아들이 어떤 일을 당했는지 알아내고 가해자들을 처벌하기 위해 나섰다. 부모님이 명현이 기억을 통해 수집한 폭행과 괴롭힘 사례는 2014년 10월부터 20종류가 넘었다.
피해자 주장에 크게 못 미치는 결론이 나온 이유는 학폭위 회의록을 보면 알 수 있다. 지난달 4일 열린 학폭위에서 학교 측은 피해자인 명현이와 부모님의 얘기를 먼저 들었다. 상습적인 폭행과 샤워장에서 명현이의 몸에 오줌을 누는 식의 괴롭힘 등이 먼저 얘기됐다.
학폭위는 이어 같은 학년인 가해자 6명의 얘기를 청취했다. 이들은 상습적이고 고의적인 폭행은 없었다고 말했다. 전지훈련 중 샤워장에서 벌어진 일과 관련해서도 “소변이 튀었을 뿐 직접 겨누고 눈 것이 아니다”라고 했다. 학폭위에서 증인으로 부른 이들은 이 학교 야구부의 감독과 코치였다.
피해자와 가해자, 그리고 야구부 관리자. 학교는 사건의 직접적인 당사자를 통해서만 사건을 조사하고 모두가 인정한 수준의 폭행 사실만 사실로 받아들인 셈이다. 학교 관계자는 “우리가 수사기관이 아니기 때문에 한계는 있겠지만 정해진 규정과 절차에 따라서 학폭위를 열고 적절한 처분을 내린 상황”이라고 밝혔다. 이 관계자는 “일부 학생에게 출석 정지 15일 처분까지 내린 것은 인정된 폭행 정도에 비해 과한 것으로 볼 수도 있다”고 덧붙였다.
장기간에 걸쳐 심각한 폭력을 당했다는 피해자와 운동부 소속 친구 사이의 가벼운 폭행이었을 뿐이라는 가해자. 그리고 절차를 지키고 양쪽의 얘기를 다 들은 뒤 결론을 내려 학폭위 징계를 결정했다는 학교. 진실은 어디에 있을까. 학교에서 벌어진 일은 명현이 측의 고소로 지난달 경찰서로 갔다. 사건을 조사 중인 경찰 관계자는 “현재 수사가 진행 중인 사안이고 사건은 조만간 검찰로 송치될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얼마 전까지 이 학교 야구부에서 생활했던 한 학년 후배 정석이(가명·14)는 “지난해 9월쯤부터 여러 달 동안 매주 적어도 한두 번씩 명현이 형이 맞는 걸 봤다”며 “후배 처지에서 봐도 ‘왜 그렇게 맞고만 있느냐’고 얘기할 수밖에 없는, 견디기 힘든 수준의 폭력이었다”고 말했다. 손이나 막대를 이용해 때리는 모습도 자주 봤다고 말했다. 정석이는 “이제 나는 거기(야구부)에 소속이 안 돼 있으니까 편하게 얘기를 할 수 있는 것”이라고 했다. 정석이는 경찰 조사에서도 비슷한 내용을 말했다.
정석이는 명현이를 체구는 작지만 ‘야무지게’ 야구하는 선배로 기억했다. 정석이는 “손의 감각을 익혀야 한다며 한겨울에도 장갑을 벗고 운동했던 형”이라고 말했다. 야구선수가 되기를 포기한 명현이는 지난달 말 서울의 한 중학교로 전학했다.
파주=김도형 기자 dod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