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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실험실]무용수들의 가쁜 숨소리-땀내에 가슴 뭉클

입력 | 2016-04-04 03:00:00

발레 ‘라 바야데르’ 출연해 보니




무대 위에서 지켜본 무대

“오케이. 합격입니다. 그 대신 두 번 이상 출연해야 해요.”

오디션을 본 강수진 국립발레단 예술감독(단장)이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 국립발레단의 올해 첫 작품 ‘라 바야데르’에 기자의 출연이 확정된 순간이었다.

‘라 바야데르’는 발레 작품 중에서도 많은 인원이 무대에 오르는 것으로 유명하다. 이번에도 111명이 무대에 올랐다. 출연자 중 전문적인 무용이 필요 없는 역할은 딱 4명. 2막에 등장하는 가마꾼 겸 창지기. 보통 무용수 출신인 발레단 사무직원들이 그 역할을 맡아 왔다.

‘무대에 직접 선다는 느낌은 어떨까’와 ‘무대 위에서 보는 무대나 객석은 어떨까’라는 궁금증을 풀기 위해 발레단에 출연을 청했다. 오디션을 통과한 뒤 역할을 위해 수염도 길렀다.

맡은 일은 간단했다. 2막이 시작되면 다른 가마꾼과 함께 두 차례 가마를 들고 무대 오른편에서 왼편으로 가면 된다. 이어 창을 든 창지기로 무대 가장 뒤쪽의 왼편(관객 기준)에서 40분간 ‘정말 가만히’ 서 있으면 된다. 2막이 끝나기 전 뒤로 돌아서는 ‘아주 간단한’ 동작이 포함돼 있다.

국립발레단의 ‘라 바야데르’ 공연에서 창을 들고 서 있는 김동욱 기자(가운데). 수석무용수 김지영은 “서 있는 역할이 무용수보다 더 힘들 수 있다”고 말했다. 40분간 미동 없이 서 있은 뒤 종아리와 발바닥에 경련이 오기도 했다. 장승윤 기자 tomato99@donga.com

2차례의 연습실 리허설을 마치고 오페라극장에서 열린 첫 무대 리허설 날. 창을 들고 10분 정도 지났을까. 정현옥 발레마스터가 다가왔다. “창을 비스듬하게 들면 안 돼요. 앞으로 조심하세요.” 시간이 어떻게 흘러가는지, 공연이 어떻게 진행되는지 모를 정도로 창의 각도만 생각했다.

두 번째 무대 리허설은 전날보다 나았지만 40분간 ‘가만히’ 서 있는 것은 고역이었다. 함께 창지기로 나선 발레단 직원이 말했다. “관객이 우리가 있는지 없는지 모를 정도로 눈에 띄지 않는 게 잘하는 거예요.” 긴장된 다리 근육 탓에 몇 차례 휘청거릴 뻔했다. 공연이 끝날 때 나도 모르게 박수를 치려고 했다. 2막이 끝나고 신무섭 부예술감독이 웃으며 말했다. “눈에 띄지 않았어요.”

지난달 30일 첫 실전엔 2000여 명의 관객이 가득 찼다. 태어나서 이렇게 많은 사람들 앞에 선 것은 처음이었다. 무대는 물론이고 객석도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서 있는 것에만 집중하다 보니 40분간의 기억이 잘 나지 않았다. 공연이 끝난 뒤 강 감독이 안아주며 말했다. “이 정도면 합격점이네요.” 눈물이 날 뻔했다.

두 번째 공연에서는 고스란히 무대가 눈에 들어왔다. 강 감독이 두 번 이상 무대에 오르라고 한 이유를 알 수 있었다. 무대에선 관객이 볼 수 없는 무용수의 표정과 무대 옆의 풍경이 눈에 들어온다. 한 주역 무용수는 객석을 향해 미소를 짓다 뒤돌아서자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어떤 무용수는 실수를 했는지 뒤돌아서면서 얼굴을 살짝 찡그렸다. 무대 옆에서 굳은 표정을 짓던 한 무용수는 무대로 들어오자마자 언제 그랬냐는 듯 환한 웃음을 지었다.

무대 위에선 관객석에선 체험할 수 없는 가쁜 숨소리와 땀 냄새를 느낄 수 있었다. 수석무용수 이동훈은 “객석에선 예쁜 표정과 몸짓의 무용수만 보이지만 무대에서 퇴장하면 힘들어 쓰러지는 무용수도 많다”고 말했다.

첫날 공연의 주역인 수석무용수 이은원은 3막 솔로 무대를 마친 뒤 가쁜 숨을 쉬며 들어왔다. “아쉬워요. 며칠 전 발목을 다쳐 힘이 들어가지 않았어요.” 연기가 만족스럽지 않아 안타까운 표정을 짓는 무용수 뒤로 터지는 박수 소리가 비현실적으로 들렸다.

PS: 오자현 공연기획팀장이 공연을 끝낸 뒤 “집에 가면 허탈감을 느낄 것이다”고 말했다. 단역일 뿐인데 그럴까 싶었다. 며칠 뒤 그 ‘허탈감’이 찾아왔다. 무대의 매력 때문이었다.



김동욱 기자 creati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