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레이션 권기령 기자 beanoil@donga.com
야마구치 히데코 일본 출신 이주여성공동체 ‘미래 길’ 공동대표
예를 들어 ‘(그 자리에) 왔을 때보다 깨끗하게 (하고 떠나라!)’라는 표어는 수십 년 동안 일본인을 움직이는 큰 원동력이 돼 있다. 나도 남의 집 화장실에 가면 휴지로 더러운 곳을 닦기도 하고 전봇대, 버스정류장에서 여기저기 광고 전단 등으로 인해 지저분하게 남아 있는 초록색 테이프를 발견하면 열심히 떼기도 한다. 누가 알아주는 것도 아니고 그다지 대단한 일도 아니지만 하다 보면 계속 하게 된다. 머릿속에는 ‘왔을 때보다 깨끗하게’라는 말이 반복해 들린다. 내가 지금 뭐 하고 있는가 싶을 때도 있지만 깨끗해진 모습을 보면서 쾌감을 느끼기도 한다. 물론 한 번도 자랑한 적이 없는 나만의 비밀이지만, 일본인이라면 아마 누구나 이 문구가 자주 떠오를 것이다.
한국에서도 이 주문이 널리 퍼지면 좋겠다. 우리 아이들이 초등학교에 다녔을 때 나는 학교 주변을 청소하는 학부모 단체 ‘깔끔이 봉사단’에서 활동했다. 당시 청소하고 있는 내 앞에서 담뱃갑 비닐 껍질을 아무렇지도 않게 길가에 버리고 가는 사람들을 보았다. 등굣길이나 운동장에도 담배꽁초가 수없이 버려져 있었고 골목길에도 수북이 쌓여 있었다.
식당에서 한국인 남편 친구들이랑 식사를 했는데, 그때 주변 테이블에서 수저를 싼 종이를 식당 바닥에 여러 사람이 동시에 버리는 것을 봤다. “왜 바닥에 버리느냐”고 물었더니 “청소하는 사람이 있으니까 괜찮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그럼 길거리에도 청소하는 사람이 있으니 버려도 되는 건가? 청소하는 사람들에게 일거리를 주기 위해?
한국에선 각 개인의 집은 대체로 깨끗하다. 공간을 넓게 보여주는 깔끔한 구조로 하루에도 두세 번씩 바닥을 물걸레로 닦고 쾌적한 공간을 확보한다. 일본의 집은 여러 가지 물건으로 아기자기하게 꾸며져 있고 좁은 공간을 메우고 활용하기 위한 ‘수키마(틈) 가구’라는 것이 등장할 정도로 수납공간이 눈에 보이게 돼 있어 한국처럼 넓고 깔끔한 느낌은 아니다. 하지만 공공장소에는 쓰레기 하나 볼 수 없다. 우선 아무도 길에다 쓰레기를 안 버린다.
일본은 흡연하는 여성도 많고 패밀리 레스토랑에도 흡연석이 있을 정도지만 흡연자는 뚜껑이 있는 휴대용 재떨이를 이용해 담뱃재도, 꽁초도 다 본인이 갖고 다닌다. 그래서 길에 버려진 담배꽁초를 찾는 게 어렵다.
2002년과 2006년 월드컵 당시 많은 사람이 서울시청 앞 광장에 모여 한국 선수들을 응원했다. 어떤 나라에선 많은 사람이 모이면 차 위에 올라타거나 옷을 벗거나 강에 뛰어 들어가거나 경기에 열중한 나머지 이성을 잃는 경우가 종종 있다. 그렇지만 한국은 달랐다. 페이스 페인팅을 하고 빨간색 티를 입고 나들이 나온 시민들이 이웃들과 즐겁게 TV를 시청하고, 질서 있게 각자의 쓰레기와 주변 정리까지 하고 집으로 돌아갔다. 그날은 집 밖이 아닌 커다란 거실에 이웃사촌들이 사이좋게 앉아 TV를 함께 보면서 조국애를 나누고, 거리를 자신의 집과 마당처럼 애착을 갖고 기꺼이 청소하고 간 것이다.
야마구치 히데코 일본 출신 이주여성공동체 ‘미래 길’ 공동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