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전기차 공유’ 佛 그르노블 현장 르포
인구 15만여 명의 프랑스 남동부 이제르 주(州)의 소도시 그르노블은 요즘 세계 교통 전문가들이 주목하는 ‘핫(hot)한 도시’다. 미래 도시 교통의 모습을 보여주는 파격적인 실험이 진행되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달 21일 오후 5시경(현지 시간) 그르노블 대학가의 ‘비블리오테크 위니베르시테르’ 트램 역 앞 전기차 충전소. 수업을 마친 학생이 이곳에 주차된 덮개가 있는 오토바이 크기의 1인용 전기차에 올라타고 어디론가 향했다. 특이한 모양의 이 차는 ‘컴스’로 불리는 1인용 공유 전기차. 한국의 전기차보다 크기가 작아 도시의 좁은 길에서도 쉽게 몰 수 있고 전기도 덜 먹어 실용적이라는 게 현지의 평가다.
○ 자동차 소유에서 공유로
그르노블도 과거에는 사람보다 자동차 중심의 도시였다. 1970, 80년대 ‘마이카 시대’로 접어들면서 자동차가 사람을 밀어내고 도심의 주인 행세를 했다. 길은 늘 차로 막혔고 보행자의 안전과 편의는 뒷전으로 밀려났다. 그르노블은 10년 전 ‘시테 리브’라는 자동차 공유(카셰어링) 서비스를 도입해 자동차의 덫에서 벗어나기 위한 실험을 시작했다.
그르노블 대중교통발전협의회(ADTC)에 따르면 카셰어링 도입 후 대중교통 이용량이 8%, 자전거 사용량이 25% 증가했다. 교통체증도 줄었다. 여러 사람이 자동차를 나눠 쓰는 카셰어링의 장점이 검증된 것이다. 나탈리 테프 ADTC 회장은 “카셰어링이 시작되면서 시민들이 차를 ‘사야 하는 물건’이 아니라 ‘필요할 때 이용하는 수단’으로 생각하기 시작했다”며 “구입비는 물론이고 주차비, 차 관리비, 보험료 등이 들지 않아 경제적으로도 이득”이라고 말했다.
다른 도시에서도 다양한 자동차 공유 서비스 모델이 등장하고 있다. 국제교통포럼(ITF)이 2014∼2015년 포르투갈 리스본에서 출발지와 도착지가 같은 시민들이 택시를 함께 타는 ‘택시 공유’를 시도한 결과 도심의 차량은 10%, 주차 면적은 6% 줄었다.
그르노블 시는 오랜 카셰어링 운영 경험을 토대로 2014년 친환경 교통수단인 전기차 공유 서비스를 시작했다.
3월 말 프랑스 이제르 주 그르노블대 캠퍼스 전기차 주차장. 이곳은 시내 27개 전기차 주차장 중 이용자가 많은 곳으로 꼽힌다. 대학이 미래 교통수단의 시험장이 된 셈이다. 그르노블=조은아 기자 achim@donga.com
길이 좁은 유럽의 오래된 도시들은 특히 전기차 공유 서비스를 속속 도입하고 있다.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카투고’), 덴마크의 코펜하겐(‘드라이브 나우’) 등이 대표적이다. 지난해 ‘자동차 천국’인 미국의 인디애나 주 인디애나폴리스가 전기차 공유 서비스인 ‘블루인디’를 선보여 눈길을 끌었다. 서울시도 2013년부터 전기차 셰어링 서비스 ‘나눔카’를 운영 중이다. 하지만 충전소와 차량 관리 서비스 인프라가 부족해 널리 이용되지 못하고 있다. 문영준 한국 교통연구원 교통기술연구소장은 “나눔카와 함께 대중교통 서비스를 연계해 지하철에서 내려 전기차를 빌려 타게 해주는 등 이용자의 편의를 더 배려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 정부-시민사회-기업의 합작품
그르노블 시의 실험이 순탄했던 것은 아니다. 자동차 소유에서 공유로, 자동차 중심에서 보행자 중심으로 리모델링하는 과정에서 시민들의 반발도 적지 않았다. 올해 1월 간선도로를 제외한 도시의 모든 도로를 저속 전기차가 달릴 수 있게 시속 30km로 제한하자 일부 시민은 “운전자의 권리를 침해하는 것”이라며 강하게 반발했다. 시 정부는 시민들에게 “아이들이 편하게 걸어서 학교에 다닐 수 있는 도시를 만들어주자”고 설득하기 시작했다. 시민단체 등과 토론회를 열고 절충안도 마련했다. 일부 간선도로의 주행속도는 시속 50km로 유지하기로 한 것이다.
시 정부는 친환경 교통수단인 전기차와 기존 교통수단이 공존할 수 있도록 제도도 손질했다. 전기차 공유 서비스를 이용하면 버스 등 대중교통 이용료를 깎아주는 것이 대표적이다. 버스나 택시 등으로 쉽게 갈아탈 수 있게 한 것이다. 악셀 드뷔 EDF 프로젝트 수석은 “할인 혜택 덕분에 대중교통 이용도 늘었다”며 “대중교통 이용이 늘어날 수 있다고 설득해 버스나 택시 사업자들의 지지를 이끌어냈다”고 말했다.
그르노블=조은아 achim@donga.com / 천호성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