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년 전 첫 번째 국산 조미료 ‘미원’을 개발한 임대홍 대상그룹 창업회장이 5일 타계했다. 향년 96세.
그가 일본에서 설움을 견디며 제조 방법을 배워와 만든 미원은 이제는 일본을 포함해 10여 개 국가로 수출하는 상품이 됐다.
대상그룹은 6일 임 창업회장의 타계 소식과 함께 “고인의 강한 뜻에 따라 장례는 가족장으로 조용히 치르고 있다”고 밝혔다. 미원의 탄생과 함께 올해 60주년을 맞은 대상그룹은 임 창업회장이 미원을 시작으로 터를 닦은 바이오산업을 미래 핵심사업으로 키우고 있다.
1955년 오사카로 건너간 그는 조미료 공장에 취업해 어깨 너머로 제조 공정을 익혔다. 임 창업회장은 한국으로 돌아와 1956년 1월 부산 동래구에 조미료 공장인 동아화성공업주식회사(지금의 대상그룹 전신)를 세우고 미원 판매를 시작했다. 1962년에는 회사 이름을 아예 미원으로 바꿨다.
미원이 나오면서 국내 조미료 시장은 국산으로 대체됐다. 1963년 제일제당공업(CJ제일제당의 전신)이 미원에 맞서 미풍을 내놓아 치열하게 경쟁한 끝에 미원이 시장을 재패했다. 제일제당공업을 시작으로 삼성그룹을 일군 고(故) 이병철 전 회장은 자서전 ‘호암자전’에서 “세상에서 내 맘대로 안 되는 세 가지는 자식농사와 골프 그리고 미원”이라고 적었다.
임 창업회장은 미원 발효 공법을 토대로 라이신 등 아미노산 제조 기술도 개발했다. 미원은 1990년대 초중반까지 라이신 세계 시장에서 점유율 1위를 차지했다. 1997년 외환위기 이후 라이신 사업을 매각한 대상그룹은 지난해 7월 다시 사들였다.
임 창업회장은 평생 출퇴근 할 때 승용차가 아닌 버스와 전철을 이용했다. 출장을 가면 호텔이 아닌 여관에서 잠을 잤다. 현재 대상그룹 사옥은 1973년 당시 서울 사무소로 쓰던 곳을 확장해 세운 곳으로 43년째 똑같은 건물이다. 남들 앞에 나서는 걸 꺼려하는 임 창업회장의 성격 탓에 대상그룹은 그동안 ‘사사(社史)’도 발행하지 않았다. 임 창업회장은 1971년 사재 10억 원을 들여 미원문화재단(현 대상문화재단)을 설립했다. 형편이 어려운 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수여하는 사업을 벌이는데 현재까지 지원한 장학금이 162억 원에 달한다.
한우신 기자 hanwshi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