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종일 아쉬운 마음으로 책과 씨름하다가 집에 들어가는 길에 “많이 가졌다는 게 반드시 행복한 일은 아니구나”라고 중얼거렸다. 언젠가 다시 꺼내서 읽을 가능성이 거의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아까워서 쌓아둔 것도 결국 나의 욕심이었다.
그렇지만 소득도 있었다. 정말 가치 있는 책이 어떤 책인지 분명하게 확인했다. 책을 만드는 일을 하면서도 막연하게만 알고 있던 좋은 책의 기준이 확실해졌다. 어떤 책은 버리고 어떤 책은 남기는 작업을 직접 하다 보니 어떤 책을 만들어야 할 것인지가 간단명료하게 와 닿았다.
요즘 선거판을 보면서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이란 책 제목이 떠오른다. 선거운동이 무슨 예능 프로그램을 보는 것 같다. 후보자에 대한 진지한 검증은 어디로 가고 모 후보의 딸이 미모라는 둥, 조카가 연예인이라는 둥 곁가지가 더 무성하다. 마침 우리 집의 아래층에 사는 분이 출마했기에 아파트 입구에서 만난 그 후보의 딸에게 “요즘 딸들이 열심이던데 아빠 선거운동 하느라 힘들겠네요”라고 했더니 “전 예쁘지 않아서 별 도움이 안 될 것 같아요. 그래도 며칠 밤새워 만든 동영상을 갖고 가는 길이에요”라며 급히 뛰어갔다.
국회의원을 뽑는데 웬 가족들의 미모 타령일까. 다 읽고 난 책을 선별하여 버리기도 쉽지 않아 몇 번이나 망설이는데 이제라도 무엇을 선택하고 무엇을 버려야 할지에 대해 더 진지하고 신중하면 좋겠다. 그렇지 않으면 그 선택은 부메랑이 되어 돌아올 수밖에 없을 것이다. 가볍게 선택하면 가볍게 취급당한다.
윤세영 수필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