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채당 20만 달러를 호가하는 평양 중심 만수대 거리의 고급 아파트 단지. 동아일보DB
북한 뉴스를 다루면서 제일 껄끄러운 게 숙청 보도다. 죽었다고 하다가 살아난 경우가 많아 오보 위험이 적지 않다. 이영길도 다시 뉴스에 등장할지 아니면 영영 매장될지 누구도 알 수 없다. 소식통이 전하는 이영길 숙청 사건의 전말은 이렇다.
주성하 기자
김정은은 이 고급 아파트에 어떤 사람들이 사는지 궁금했던 것 같다. 그래서 측근에게 판매용 아파트에 사는 사람들을 조사해볼 것을 지시했다. 얼마 뒤 조사보고서를 받아 본 김정은은 버럭 화를 냈다. 아파트 구매자의 60%가 군부였던 것이다.
“내가 외무성이나 무역성 사람들이 살고 있다면 이해하겠지만 군대가 뭔 돈이 이리 많아. 당장 뒷조사를 해봐!”
김정은의 불호령이 떨어지자 군부의 집중 검열이 시작됐다. 이 과정에서 이영길도 뇌물을 받고 측근들을 감싸준 비리가 걸려들었다. 검열에 걸리지 않을 자가 있을까 싶지만, 이영길은 좀 심했던 것 같다. 내부에서도 “젊은 놈이 눈에 뵈는 것이 없이 해먹었다”고 수군거릴 정도라고 한다. 아마 이영길은 ‘얼마나 이 자리에 있을지 모르니 있을 때 최대한 한몫 챙기겠다’고 생각했나 보다. 게다가 그는 비교적 젊은 나이에 벼락출세해 고령자가 많은 군부 내부에서 반대파도 많았던 것 같다.
2월 초 이영길을 강등시킨 군부 수사는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2월 말부터는 군 보위국(옛 보위사령부)을 대상으로 집중 검열이 진행되고 있다고 한다. 만수대거리에 집을 샀던 군 간부 중에 보위국 소속이 유독 많았다는 것이다. 북한 내부에선 보위국장인 조경철 대장이 다음 숙청 대상이라는 소문이 나돈다. 공교롭게도 3월 20일 북한 언론은 보위국이란 명칭을 처음으로 공개해 보위사령부가 사라졌음을 공식화했다.
군부 비리 조사가 시작되자 평양 시내 고급식당은 순식간에 한산해졌다. 평양에서 호화식당의 대명사로 불리던 해당화관도 텅텅 비었다고 한다. 군인들은 호화식당의 주요 고객이었다.
군부에 돈이 넘치는 이유는 간단하다. 북한 최대의 이권단체가 됐기 때문이다. 장성택 숙청 이후 그의 파벌이 장악하고 있던 큼직큼직한 이권들이 군부로 대거 넘어갔다. 북한 수입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던 원유 수입권도 장성택 최측근 수하인 장수길 행정부 부부장이 주물렀지만 그가 처형되면서 군부 손에 넘어갔다. 북한 원유 수입액은 매년 7억 달러로 추산된다. 이번 대북제재는 항공유 수입만 금지했을 뿐 원유는 금지하지 않았다. 그래서 지금도 단둥에서는 중국 유조차가 수십 대씩 줄지어 북에 넘어가 돌아오지 않는다. 중국이 유조차까지 함께 팔기 때문이다. 북한은 요즘 주유소 사업이 붐을 이루고 있어 유조차 수요가 많다. 이 주유소 사업권의 대다수도 군부 소속 회사들이 쥐고 있다.
북한 수출액의 거의 절반을 차지하던 석탄 이권 상당수도 군부가 갖고 있다. 지난해 북한의 석탄 수출액은 10억5000만 달러(약 1조2150억 원)였다. 석탄 가격이 좋았던 몇 년 전에는 15억 달러(약 1조7355억 원)가 넘기도 했다. 중국이 유엔 대북제재 결의에 따라 석탄 수입을 막으면 군부가 가장 큰 피해자가 된다. 거기에 비리 조사까지 시작됐으니 이 화창한 봄날에 속은 얼마나 새파랗게 떨릴까.
북한군 비리 이야기를 쓰다 보니 한 가지가 딱 걸린다. 오늘 이 칼럼을 읽어볼 정찰총국이나 통전부 등 북한 대남기관 담당자들이 어떤 반응을 보일지 벌써 내다보인다는 것이다. “우린 스스로 벌어서 해먹지 세금은 안 빼먹어”라고 할 게 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