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파고 쇼크’ 이후 서울 강남에서는 코딩 과외가 등장하는 등 코딩 교육 과열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 사진은 초등학생들이 교육용 스마트로봇으로 코딩 실습을 하는 모습. 동아일보DB
장영재 KAIST 산업및시스템공학과 교수
공대 교수가 무슨 얘기냐고 반문할 수 있겠지만 나는 코딩에 대한 트라우마가 있다. 초등학교 4학년 때 처음 코딩을 접하고 새로운 것을 만들어낸다는 재미가 쏠쏠했다. 6학년 때에는 간단한 게임도 혼자 만들었다. 하지만 학내 프로그래밍 대회에서 우승하면서 비극(?)이 시작됐다. 정부가 주관하는 대회에 학교 대표로 선발되면서 따로 교육을 받았는데, 나는 어려운 책을 받아들고 도무지 알 수 없는 설명을 들었다. 모르면 무조건 외우라는 식의 교육을 받은 지 한 달 뒤. 나에게 남은 건 뒤죽박죽 암기만으로 너덜너덜해진 사고였다. 나를 포함한 학교 대표들이 모두 예선조차 통과하지 못했다. 2년 넘게 내가 좋아한 코딩이 단 4주 만에 싫어지다니….
‘알파고 대란’ 이후 코딩 교육으로 온 나라가 난리다. 벌써 강남 초등학교 부모들 사이에선 코딩 과외 열풍이 분단다. 교육부는 이미 소프트웨어 시험학교를 운영하고 있다. 하지만 잊지 말아야 할 게 있다. 기술을 가르치기 전 소프트웨어의 개념과 사고에 대한 교육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구글과 페이스북은 서비스에 대해 돈을 받는다는 과거의 개념에서 탈피해 데이터 기반의 비즈니스란 새로운 개념을 만들어 성공했다. 이처럼 개념이라는 걸 개발하는 것은 새로운 사고 체계를 가진다는 의미다. 현재의 사고 체계로 새로운 개념에 대한 이해는 불가능하다.
대학에서 전산학 수업 등을 들으며 코딩 트라우마를 치유한 나는 올 초부터 우리 아이에게 코딩을 직접 지도하고 있다. 처음엔 ‘저학년 아이가 따라갈 수 있을까?’, ‘괜히 일찍 시작해서 흥미를 잃게 하지 않을까?’ 하며 걱정도 했었다. 하지만 석 달 정도 가르친 요즘 아이가 이제는 어느 정도 스스로 프로그램을 만드는 것을 보니 시작한 게 나쁘지는 않았다는 생각을 한다. 아이에게 가르치는 프로그램은 미국 매사추세츠공대(MIT)의 미디어랩이 개발한 스크래치란 교육용 소프트웨어다. 누군가는 나를 ‘극성 아빠’로 여길 것이다. 하지만 이 프로그램을 누군가 본다면 다소 놀랄 것이다. ‘이게 무슨 코딩 교육이냐?’고. 스크래치를 살펴보면 복잡한 컴퓨터 언어는 하나도 없고 단순한 블록 쌓기 게임 같은 작업만 잔뜩 있다. 스크래치는 컴퓨터 전문 코딩 기술 자체를 가르치기보다는 그 개념을 전달하는 학습 도구다.
내가 아이에게 직접 코딩을 가르치는 이유는 컴퓨터 소프트웨어 전문가로 키우기 위한 것은 절대 아니다. 앞으로 살아갈 세대는 컴퓨터 소프트웨어 개념을 알 필요가 있다. 그러한 개념과 사고로 새로운 세상을 바라보게 개념을 전달하는 것이 목적이다. 소프트웨어 교육은 분명 필요하다. 하지만 이러한 기술이 담길 개념의 그릇과 새로운 사회적 개념에 대한 이해가 없다면 코딩을 교육받은 사람들은 단순한 기능공으로 전락할 수 있다. 내가 겪은 코딩 트라우마가 반복되지 않았으면 한다.
장영재 KAIST 산업및시스템공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