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26년 나온 ‘걸리버 여행기’ “의원들 뇌 절반으로 갈라… 다른 당파에 붙여놓는 수술” 친박 비박 진박 친노 비노 친문… 끝판에 이른 패거리 정치 뇌수술이나 AI 의원으로 대체 못한다면 투표로 잘 가려 뽑아야
주경철 객원논설위원 서울대 서양사학과 교수
사상 최악이라는 오명을 쓴 19대 국회를 보면 그런 느낌을 지울 수 없다. 단언컨대 현재 국회는 국민의 눈높이에 한참 뒤떨어져 있다. 친박 비박 진박 혹은 친노 비노 친문 같은 해괴한 패거리에다가 ‘존영(尊影)’을 거두어들이네 마네 하는 얘기까지 들리는 걸 보면 정말 끝판에 이른 것 같다.
한번 선거로 의원을 뽑은 후에는 사실상 국민의 손을 벗어나 달리 통제할 수 없다는 것이 문제다. 국민소환제 얘기가 나오는 게 그 때문이다. 물건 산 뒤에도 불량품이면 취소·환불이 가능한데 의원이라고 그러지 못하랴 하는 논리다. 실제로 고대 그리스에서 도편추방제(ostracism)를 통해 부패한 정치가를 장기간 해외로 추방시킨 사례도 있다.
웹과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로 무장한 ‘똑똑한 군중(smart mob)’이 부정과 불의에 항거하는 집단행동을 더욱 가열하게 하면 나아질까? 이 역시 희망보다는 우려가 앞서는 게 솔직한 심정이다. 집단 이기주의의 발로가 분명한데 촛불만 손에 들면 스스로 정의의 사도라고 착각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원래는 고매한 자기반성의 수단이었을 삼보일배(三步一拜)도 이제는 탐욕스러운 이익 관철 수단으로 악용되곤 한다. 인터넷에는 시대의 악을 준엄하게 꾸짖는 선지자들이 넘쳐나지만 왜 이런 분들은 다른 사람과 함께 겸손하고 차분하게 반성하는 대신 남을 그토록 격하게 비난할까 의문이 든다. 혹시 남을 비난함으로써 자신의 도덕적 우위를 과시하면서 내면의 죄의식을 ‘드라이클리닝’하는 게 아닐까?
우리 사회의 많은 문제들이 과도한 평등의식에 기인한다는 이야기를 자주 접한다. 과연 그럴까? 누구든 공평하고 평등하게 모든 것을 나눠야 한다는 긍정적 의미의 평등의식이 그렇게 강했다면 우리 사회는 벌써 지상천국이 됐을 거다. 실상은 정반대다. 내가 더 많은 부와 권력을 갖고 내 아이가 더 좋은 학교에 가야 한다며 몸부림을 치지만 그렇게 되지 못한다면 다른 사람도 절대 잘되면 안 된다는 ‘좌절된 엘리트주의’에 가깝다.
우리 사회의 갈등과 분노는 폭발 직전이다. 이것을 평화롭게 조정하는 게 국회의원들의 소중한 의무지만 오히려 시민의 분노를 증폭시켰다. 당과 당이 싸우는 것을 넘어 이제는 같은 당 내에서 죽기 살기로 싸운다. 이 문제를 풀 묘수가 없을까?
18세기 영국 작가 스위프트는 ‘걸리버 여행기’에서 이런 아이디어를 내놓았다. 각 당의 의원 100명씩 골라 솜씨 좋은 외과의사들이 이들의 뇌를 톱으로 반씩 자른 다음 각기 다른 당파 사람들 뇌에 붙이자. 그러면 처음에는 각 의원들의 두개골 안에서 한참 싸움이 벌어질 테지만 조만간 서로를 이해하면서 중용과 조화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혹은 의원 선출을 제비뽑기로 하되 투표를 할 때는 무조건 왕실을 위해 표를 던지도록 서약을 받자는 제안도 한다. 이런 냉소적 이야기를 하는 걸 보면 의회 민주주의의 선진국인 영국에서도 당시 의원들이 어지간히 조롱을 받은 모양이다.
단기적으로, 다시 말해 우리가 아직 살아있을 때 개선이 이뤄지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뾰족한 수가 없다. 눈 크게 뜨고 의원들 잘 가려 뽑는 수밖에 없다. 일단 최악은 피해야 하지 않겠는가.
주경철 객원논설위원 서울대 서양사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