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페라 ‘가면무도회’ 내한공연 임세경
“伊라스칼라 극장 합격뒤 단역 신세… 2년간 이름조차 안 부르던 선생님
내 졸업노래에 ‘미안… 보상할 기회를’… 2015년엔 ‘아이다’ ‘나비부인’ 주역 맡아”

소프라노 임세경은 “공연을 마치면 내가 했던 노래를 복기하느라 한 숨도 못 잔다. 남들보다 한 발 더 나가야 된다고 생각해서 그런가 보다”라고 말했다. 수지오페라단 제공
대학 4학년 때 아버지가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났다. 졸지에 어머니와 두 동생을 뒷바라지해야 했다. 3년간 피아노 학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며 생계를 꾸렸다. 하지만 현실에 안주하지 않았다. 1000만 원을 어렵사리 모아 2001년 이탈리아로 유학을 떠났다. “노래를 더 잘하고 싶었어요.”
2004년부터 밀라노 베르디 음악원을 다니는 동안 그는 절대 허투루 돈을 쓰지 않았다. 아르바이트 등을 하며 매달 150만 원을 한국에 보냈다. “잘되려면 옷도 예쁘게 입고 꾸며야 하는데 그럴 마음의 여유가 없었어요.”
2005년 2년 과정의 라스칼라 극장 전문 연주자 과정에 합격했다. 기쁨도 잠시. 담당 선생님은 지독한 인종 차별주의자였다. 2년 동안 그의 이름조차 부르지 않을 정도로 무시했다. 단역만 맡았다. 졸업을 앞두고 노래할 기회가 주어졌다. 그가 노래를 끝내자 선생님이 다가왔다. “미안하다. 내가 그동안 네 마음을 알아주지 못했다. 보상해주고 싶다.” 1년의 기회를 더 받았다. 조연부터 주역까지 맡았다.
성악가치고는 작은 키(159cm)지만 그는 무대에서는 작아 보이지 않는다고 당차게 말했다. “분명 맡을 수 있는 역할이 제한적일 수 있겠지만, 제 성량이나 연기로 만회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지난해 인생 최고의 전환점을 맞았다. 유럽의 오페라 극장들을 오가며 경험을 쌓던 그는 지난해 1월 세계 5대 오페라 극장 중 하나인 빈 국립오페라극장에서 ‘나비부인’ 주역으로 섰다. 5대 오페라극장에 한국인 소프라노가 주역으로 선 것은 조수미, 홍혜경을 제외하고는 거의 없다. 그해 8월에는 세계 최고의 오페라 페스티벌 중의 하나인 ‘아레나 디 베로나’의 대표 작품인 ‘아이다’의 주역도 맡았다. 102년 만의 첫 한국인 주역이다.
만화 속 ‘캔디’ 같은 그는 2년 만에 오페라 ‘가면무도회’ 주역을 맡기 위해 귀국했다. “‘나비부인’ ‘아이다’를 넘어 ‘마농’ ‘운명의 힘’ 등 제가 잘할 수 있는 작품을 하고 싶어요. 궁극적으로는 장수하는 가수가 되고 싶어요. 그래야 돈 벌며 어머니 편하게 모실 수 있죠.” 공연은 15, 16일 오후 7시 반, 17일 오후 4시 서울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에서 열린다.
김동욱 기자 creati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