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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 기자의 달콤쌉싸래한 정치]20대 국회는 ‘개헌국회’다

입력 | 2016-04-11 03:00:00


이재명 기자

필자는 지난달 25일 한국정당학회가 주최한 ‘20대 총선 쟁점과 전망’ 토론회에 참석했다. 이날 여권은 김무성 대표의 ‘옥새 전쟁’으로 파국의 갈림길에 서 있었다. 자연히 토론회의 관심은 여권의 공천 내전이 총선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로 모아졌다. 한 토론자는 “박근혜 대통령이 (‘보이지 않는 손’ 대신) ‘보이는 주먹’을 휘두른 건 그만큼 힘과 자신감이 떨어졌다는 증거”라고 했다. 거칠고 무자비하게 찍어 누르지 않고는 권력을 운용할 재간이 없는 것, 그것이 대한민국 정치의 현주소다.

이번 총선 과정에서 주목해야 할 대목은 이것이다. ‘공천 막장극’을 연출한 ‘친박(친박근혜) 패권주의’는 쇠락할 수밖에 없는 권력의 속성이자 몸부림이다. 그런 점에서 ‘친노(친노무현) 패권주의’와 상통하는 부분이 있다. 어떤 정치세력도 대통령 임기 5년간 권력을 유지할 힘과 능력이 없다는 사실은 이번에도 다시 한번 입증됐다. 권력의 선택지는 달이 차면 기우는 권력의 속성에 순응할 것인지, 아니면 저항할 것인지뿐이다.

전두환 정권은 1987년 국민의 대통령 직선제 요구를 깔아뭉개며 ‘4·13호헌조치’를 발표했다. 그 내용이 소름끼친다. 당시 전두환 정권이 내각제 개헌을 추진하자 야당은 수상제를 통한 장기집권 음모라며 반대했다. 이에 호헌조치를 통해 대통령 직선제의 문제점을 조목조목 지적한 것이다. △전국적 과열 선거와 선심 공세로 경제가 어려워지고 △지역감정을 자극해 국가가 분열되고 △선거가 끝난 뒤 선거 결과에 승복하지 않고 △전부 아니면 전무라는 극한투쟁이 되풀이된다는 논리였다. 그 뒤 30년간 우리가 본 모습 그대로다.

더 소름끼치는 건 1948년 헌법 제정 당시부터 이미 ‘대통령제의 폐단’은 예견됐다는 점이다. 당시 헌법기초위원회가 만장일치로 채택한 내각제는 이승만 초대 대통령(헌법 제정 당시 국회의장)이 반대하면서 대통령제로 바뀌었다. 그러자 제헌국회 김약수 의원은 “대통령이 취임해 있는 동안 대통령의 권한이나 위치는 불변이다. 비록 그릇된 일이 있더라도 꼼짝 못하게 된다. 거기에 대한 항거로 각종 혁명이 일어날 수 있다”고 주장했다. 4·19혁명과 6·10항쟁 등을 거쳐 절차적 민주주의가 완성된 지금도 ‘권력의 이전투구’가 끊이지 않는 건 현 권력구조(5년 단임 대통령제)하에서 ‘지키려는 세력’과 ‘바꾸려는 세력’ 간 숙명적 대결의 결과인지 모른다.

차기 정부가 출범하는 2018년은 헌법 제정 70년이자 마지막 개정 헌법이 시행된 지 30년이 되는 해다. 그동안 헌법정신은 성숙했는가, 퇴보했는가. 간단한 사례만 봐도 답은 명확하다. 헌법 제정 당시 헌법 초안을 만든 유진오 박사는 대통령의 독주를 막기 위한 ‘합의체 기구’로 국무회의를 만들었다고 설명했다. “대통령 한 사람이 결정하고 실행하는 게 아니라 대통령과 국무총리, 기타 국무위원으로 조직된 합의체에서 주요 국책을 의결한다”는 것이었다. 오늘날 국무회의는 ‘합의체 기구’인가.

더불어민주당 김종인 비상대책위원회 대표가 저작권을 주장하는 ‘경제민주화’는 헌법 초안에도 반영돼 있다. 유 박사는 “헌법의 기본정신은 ‘정치적 민주주의’와 ‘경제적·사회적 민주의의’의 조화”라고 했다. 그러면서 “모든 사람의 자유 활동을 인정할 뿐 아니라 약한 사람은 붙들어주고 강한 사람은 조정하는 그런 체제를 채용했다”고 설명했다. 그럼에도 아직까지 ‘경제민주화’의 내용을 놓고 다투는 건 정치권의 명백한 직무유기다.

박 대통령은 개헌에 반대하며 “개헌은 블랙홀”이라고 했다. 맞는 말이다. 그렇기에 개헌 논의는 더욱 절실하다. 더 이상 특정 세력이 대한민국을 바꿀 수 없다는 것은 명확하다. 그렇다면 권력구조 재정립을 통해 국가 운영 방향을 새로 설정해야 한다. 우리 사회가 다시 도약하려면 권력구조뿐 아니라 복지와 증세 등 모든 논쟁거리를 개헌이란 블랙홀에 담아 정리해야 한다는 의미다.

독일의 법철학자 구스타프 라드브루흐는 “헌법은 민족 역사의 흐름을 예비하는 것”이라고 했다. 헌법 제정 당시 사회복지에 대한 관심이 없을 때부터 사회권을 명문화했듯 개헌 과정에서 앞으로 우리 사회가 어디로 나아갈 것인지 사회적 대타협을 이뤄내야 한다는 얘기다.

개헌은 강력한 정치적 리더십이 없으면 불가능하다. 정치권에선 박 대통령보다 더 강력한 지도자가 나오기 힘들다는 점에서 개헌은 영영 불가능한 과제라는 전망도 있다. 박 대통령이 마지막 카리스마를 불태워야 할 지점은 ‘국회 질타’가 아니라 국가 미래를 위한 공론장의 마련이다. 강력한 대선주자가 없는 지금이 개헌의 최적기이자 마지막 기회일지 모른다. 20대 국회가 역사적 국회가 될 수 있는 유일한 길이다.
 
이재명 기자 egij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