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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해어화’ 주연 천우희 “배역 고민에 이명에 탈모까지 왔어요”

입력 | 2016-04-11 19:01:00


해어화 주인공 배우 천우희. 사진 신원건 기자 laputa@donga.com

2016년 상반기의 여배우는 천우희(29)가 될 가능성이 높다. 2014년 개봉한 ‘한공주’에서 ‘올해의 발견’이라는 찬사를 들었던 그는 한달 간격을 두고 개봉하는 ‘해어화’와 ‘곡성’에서 잇달아 주연을 맡았다.

13일 개봉하는 ‘해어화’에서는 소율(한효주)과 경쟁하는 기생학교 출신 가수 연희를 연기했다. 자신의 재능을 발견해준 작곡가 윤우(유연석)와 비극적인 사랑에 빠지는 인물이다. 5월 중순 개봉하는 나홍진 감독의 신작 ‘곡성’에서는 유일한 여자 주연, 무명으로 나온다. “‘해어화’에서는 예쁘게 꾸미고 나오는 역할을 맡았는데, ‘곡성’에서는 ‘거지꼴을 하고 나온다’고 사람들이 놀랄 것 같다”며 웃는 천우희를 7일 서울 종로구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써니’부터 ‘카트’ ‘해어화’까지 여자 출연자가 많은 영화를 잇달아 찍었다.

“복이라면 복이다. 한국 영화계에 여배우들이 많이 나오는 작품이 흔치 않다. 내가 여자랑 ‘케미’가 좋다고 봐주시는 것 같다. 팬도 여자 팬이 많다.”

-그렇게 치면 이번 영화에서 처음으로 남자와의 멜로 연기를 한 셈이다.

“맞다. 지난해 ‘손님’에서 류승룡 씨와 약간 멜로 연기가 있었지만 이렇게 직접적인 건 처음이었다. 특히 ‘해어화’의 감정선이나 관계가 워낙 복잡하다보니 고민도 많고 혼란스러운 부분도 많았다. 나 스스로도 연희가 어떻게 소율과 친한 친구이면서 소율의 연인이었던 윤우를 빼앗을 수 있지, 라고 생각하게 되더라. 연희의 감정이나 상황이 세밀하게 보이지 않다보니 어떻게 하면 짧은 순간에도 연희의 다면적인 모습을 압축해서 보여줄 수 있을지 많이 고민했다.”

-배역에 대해 하고 싶은 얘기가 많은 것 같다.

“이렇게까지 고민한 역할은 처음이었다. 이명(耳鳴)에 탈모까지 왔다. 머리를 쓱 넘기면 우수수 머리카락이 묻어 나와서 ‘어, 이게 뭐지’ 할 정도였다.(웃음) 연희라는 인물을 알아 가는데 필요한 힌트들이 조금 부족했다. 영화에 빠진 장면이 있는데, 어릴 적 연희를 기생학교에 버렸고 그 뒤로도 연희를 이용하기만 했던 아버지를 윤우와 함께 있다 마주친다. 가장 수치스러운 부분을 윤우에게 들킨 거다. 연희는 그 때 자신의 재능을 발견해주고 인생의 행로를 변화시켜준 인물에게 모든 걸 쏟아낸다. 윤우는 그런 연희를 보며 조선 사람들의 목소리를 담은 ‘조선의 마음’을 작곡하게 된다. 그런 장면들이 들어갔다면, 좀더 연희의 면모가 잘 보이지 않았을까.”

-영화 속에서 연희와 소율, 그리고 윤우의 삼각관계보다는 여자들 간의 애증이 더 매력적으로 느껴졌다.

“배경이 1940년대지만 영화가 지금, 현재의 관객들에게 하고자 하는 말이 무엇인가가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해어화’를 보면 1940년대에도 여성들이 자기 재능에 대해 고민을 하고, 또 재능을 갈망하기 때문에 가까운 사람을 시기하지 않나. 그렇게 자기 자신에 대한 고뇌가 많은 여성들의 모습을 보여주는 영화라고 생각한다. 두 여자 사이의 대립이 좀더 팽팽하게 그려졌다면 좋았겠지만 편집이나 영화의 흐름은 저 혼자만의 것이 아니니까…. 감독님이 표현하고자 하시는 부분이 있었다고 생각한다.”

-극중 기생은 예인으로 묘사되고, 영화는 예인으로서 갖는 무대에 대한 욕망을 그린다. 배우로서 공감되는 부분이 있던가. 다른 배우에 대한 질투라던가.

“다른 배우를 신경 쓰거나 하지는 않는다. 나는 나일뿐이고 각자 다 나름의 색깔이 있고 개성이 있는 거니까. 순간적인 부러움은 있을 수 있지만 막 욕망에 들끓고 그러지는 않는다. 원래 다른 사람의 인생에 그리 신경을 곤두세우는 편이 아니다. 개인적으로는 연희가 재능이 있는데도 현실에 부딪혀서 그 꽃을 피우지 못하고 사그라지는 게 그렇게 짠할 수가 없더라.”

-‘한공주’에서도 노래 실력을 보여준 적이 있는데 이번 영화에서도 노래를 많이 불렀다.

“4개월 동안 발성부터 시작해서 정말 미친 듯이 연습했다. 자꾸만 영화 속에서 연희 보고 ‘마음을 울리는 목소리를 지녔다’고 하니 부담스럽더라. 연희의 감정을 노래 속에 담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연습하면서 가수들이 정말 대단하다 싶었다. 연기도 감정을 표현하는 일이지만 가수는 3분에서 5분, 아주 짧은 시간 안에 폭발적으로 딱 보여줘야 하지 않나. 쉽지 않았다. 가수들이 존경스러웠다.”

-극중 삽입곡이자 가장 클라이맥스에서 부르는 노래 ‘조선의 마음’의 1절을 직접 작사했다고 들었다.

“‘조선의 마음’의 가사가 촬영 중반까지 여러 번 바뀌었다. 제가 연희를 연기하는 중이니까 그 곡을 받고 노래를 부르는 순간 마음이 막 움직여야 한다는 생각이 들더라. 물론 좋은 가사를 써주셨지만, 받아볼 때마다 마음에 그렇게 타격이 크지 않은 거다. 그래서 정말 조심스럽게, 그렇지 않아도 끼적거리던 것도 있고 해서 제가 한번 써보면 어떨까요, 하고 제안했다. 의외로 좋아해주셔서 1절 가사가 됐다.”

-한효주 씨와는 ‘뷰티 인사이드’에서도 호흡을 맞췄었는데.

“‘뷰티 인사이드’에서는 너무 짧게 나왔던 터라…. 게다가 나름 멜로연기였던 ‘뷰티 인사이드’랑은 달리 상황도, 호흡도 달랐다. 서로 힘들어서 신경 쓰지 못한 부분도 있지만, 그래도 동갑이다 보니 서로 고민하는 지점이 비슷했던 거 같다. 촬영하면서 얘기를 많이 나눴다.”

-만나보니 어떤 배우라는 생각이 들던가.

“‘여리여리’하고 가냘픈 느낌이 있다보니 실제로도 그럴 거라고 생각했다. 그 동안의 연기도 그렇고, 보여준 모습도 그렇고. 그런데 외모와는 달리 같이 연기를 할 때 흔들림이 없더라. 체력적으로나 감정적으로 힘들었을 텐데 꿋꿋하게, 의연하게 잘 대처를 하는 모습에 놀라기도 했고 닮아야 되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 동안 출연한 영화 중에서 가장 예쁘게 꾸미고 나오는 역할이기도 하다.

“그 전에는 늘 의상이 영화 내내 한 벌이나 두 벌이었는데 계속 갈아입고 화장도 하고 양장도 입고 변신을 할 수 있어서 좋았다. 지금이 아닌 1940년대를 접할 수 있다는 게 배우로서 정말 좋은 특권인거 같다. 촬영할 때 입었던 당시의 의상을 한 벌 선물 받았다. 그 동안 우연찮게 작품마다 한 벌씩 의상을 선물 받았던 터라 모아놓은 걸 보면 뿌듯하다.”

-나중에 모아서 전시회를 해도 되겠다.

“그러려면 진짜 ‘열일’(열심히 일을) 해야겠다. 하하.”

-영화 말미 등장하는 빗 속 몸싸움 장면이 인상적이었다. 체력적으로 힘들지는 않던가.

“정말 힘들었다. 영화에서 나온 것보다 훨씬 격렬하게 땅에 뒹굴고 엎어지고 했다. 게다가 한효주 씨랑 체격 차이가 좀 나다 보니…. 그래도 내가 순간적인 힘은 강하다.”

-실제로 만나보니 체구가 생각보다 작아서 놀랐다.

“화면으로 봤을 때는 작아 보이지 않는다는 말씀을 많이들 하신다. 사실 실물보다 화면에서의 내 모습이 더 좋다. 내 키를 안 보여주는 화면이, 특히 혼자 나올 때가 제일 좋다.(웃음)”

-예전 인터뷰에서 ‘평범하게 생겼지만, 그래서 존재감이 있는 것 같다’고 스스로를 묘사한 것이 인상적이었다.

“미의 절대적인 기준에 상응하는 얼굴은 아니라고 생각하는데 배우의 얼굴로는 너무나 만족한다. 평범하지만 굉장히 비범해보였으면 좋겠다고 늘 생각한다. 내가 진짜 극중 인물이 된다면, 관객들에게는 그저 평범한 그 인물로 보이는 것 아닌가. 하지만 동시에 그 영화에 잘 녹아들었다는 점에서 배우로서 비범한 존재감을 갖게 되는 거라고 생각한다. 그런 연기를 늘 추구한다.”

-한달 간격으로 ‘곡성’이 개봉한다. 배우들의 연기도 연기지만 작품 자체에 대한 기대감이 상당한데.

“처음 시나리오 받았을 때 말 그대로 ‘멘붕(멘탈붕괴)’, 대혼란이었다. 어떻게 이런 시나리오를 쓸 수 있지 하는 생각이 들더라. 동시에 ‘아, 도전해보고 싶다. 불길 속에 뛰어들고 싶다’라고 생각했다. ‘해어화’랑 개봉 시기가 맞물려서 아쉽기도 하지만 극명하게 다른 모습을 보실 수 있을 거다. ‘해어화에서는 예뻐진 줄 알았더니 또 거지꼴을 하고 나오네’ 하실 수도 있다.(웃음)”

-강한 역할을 자주 맡는다. 전작의 연기를 뛰어넘어야겠다는 부담감이 있나.

“전작을 뛰어넘고 싶은 마음은 있다. 그런데 꼭 지난번에 이런 작품을 했으니 이번에는 완전히 새로운 모습을 선택해야지 하는 식은 아니다. 배우로서 한발 한발 꾸준히 해나가면서, 주어진 작품 안에서 최선의 노력을 하며 배역을 잘 소화하다보면 그런 넘어서는 순간이 오지 않을까. 그러다보면 어느 순간에는 (배우로서) 완성이 돼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조바심을 내는 성격은 아닌 것 같다.

“‘내가 나이가 많나? 좀 느린가?’ 이런 생각을 하지 않는다. 배우로서 지금이 느리지도 빠르지도 않은 적당한 속도인거 같아서 너무나 만족스럽다.”

이새샘 기자 iamsa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