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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옥에 살다]한옥의 매력, 디테일로 완성된다

입력 | 2016-04-12 03:00:00


현대식 한옥들은 디테일에서부터 차이를 보인다. 왼쪽 점선은 한 한옥호텔에 설치된 전기 스위치, 오른쪽 원 안은 도어록을 설치한 한옥 대문과 자물쇠를 설치한 한옥 대문의 모습. 동아일보DB·한옥문화원 제공

장명희 한옥문화원장

42세 민철 씨는 서울 북촌 한옥에서 나고 자랐다. 어렸을 때, 그의 엄마는 부엌 오르내리기도 힘들고 청소하기도 불편하다며 늘 아파트로 이사 간 이웃을 부러워하셨지만 그 집을 떠나지는 못하셨다. 결혼하며 분가했던 그는 연로해진 부모님과 함께 살기로 하고 집을 수리했다. 70년 된 집이니 손댈 곳이 많아, 아예 전체를 해체하고 재조립했다. 전통 한옥의 아름다움은 살리면서 현대의 생활시설을 도입하는 것이 수리의 전제였다.

그는 광고 종사자로서 디자인에도 관심이 많다. 배낭여행이나 출장으로 외국에 갈 때면 역사적 건축물 감상도 빼놓지 않는다. “멋지다!”고 감탄하던 파리 구시가지의 오래된 석조건물이 생활에 얼마나 불편한지, 계단의 삐걱거림과 외풍은 또 얼마나 심한지를 그곳에 사는 프랑스인 친구를 통해 알게 되었다. 그러면서 오히려 우리 전통 건축물의 가치를 인식하게 되었으니, 한옥에서 살기로 결정한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그는 “명품은 디테일에서 나온다”고 믿는다. 비싼 것이 좋은 것은 아니라는 철학도 확고하다. 그에게 명품은 큰 것에서부터 작은 요소에 이르기까지 기능과 디자인이 조화를 이룬 것이다.

좋은 전문가들을 만나 집수리 일은 즐겁게 진행되었다. 그러나 어려움은 집이 완성을 바라보게 되었을 때 시작되었다. 전기 스위치 커버, 콘센트 박스, 수납장, 주방가구 등 세세한 부분에서 한옥에 어울리는 제품을 구하기 어려웠던 것이다.

예를 들면 조명기구를 구하기 위해 며칠간 전문상가를 샅샅이 뒤졌지만 마음에 드는 것을 찾지 못했다. 서까래며 보 등 목구조가 이루는 선이 많은 한옥과 어울리는 디자인 개발이 되어 있지 않은 것이다. 결국 대청에는 등 박스 없이 간접조명을 하기로 했다. 또 보안을 위해 대문에 설치한 도어록(door lock)의 금속 재질도 거슬린다. 그래서 도어록을 아예 달지 않는 이웃들도 있지만, 가족이 모두 외출할 때는 문을 밖에서 잠가야 하니 그게 꼭 필요했다. 그런데 그 재질과 디자인이 한옥의 목재 대문과 어울리는 제품은 없을까.

한옥을 지을 때 집의 미감을 좌우하는 세부와 현대생활 시설에 해당하는 대부분의 요소에서 이런 문제는 발생한다. 그렇다 보니 결국 기성 제품 가운데 찾아 쓸 수밖에 없어서 많은 시간 준비하고 애써 지은 한옥의 완성도를 떨어뜨리게 된다. 따로 디자인하여 맞춤 주문을 하기도 하지만 이 경우 비용이 상당하다.

지난 10년간 한옥에 대한 대중의 관심은 빠르게 변했다. 북촌과 전주의 한옥마을은 우리나라 대표 관광지가 되었고, 전라남도에는 2006년부터 현재까지 1300여 채의 한옥이 신축되었다. 개인주택은 물론이고 호텔 공공청사 도서관 등 다양한 용도의 한옥이 지어지고 있다. 신라호텔이 서울 장충동에 한옥호텔을 짓고 면세점을 입점시키겠다고 했으니, 그렇게 되면 한옥의 역할은 더 커질 것이다.

이런 성과는 전통문화 진흥을 목표로 한 정부와 지방자치단체의 지원이 초기 동력을 제공했기에 가능했다. 현재 한옥 분야에서 전통문화 진흥을 위한 큰 틀의 고민과 지원은 상당히 진행되고 있지만 문제는 작은 요소들이다.

그런데 왜 한옥 신축이 많아진 이때, 관련 업계는 한옥을 겨냥한 작은 요소들의 디자인을 개발하지 않는 걸까. 아쉽게도 현실은 그리 간단하지 않다. 한옥 건축이 활발하다 해도 그 수는 전체 건축 인허가 물량의 0.5%에 불과하니 기업이 개발에 투자하기에는 시장규모가 너무 작은 것이다. 전통에 기반을 두고 잘 디자인된 건축 부속품 개발은 한옥의 완성도를 높이기 위해 반드시 필요하다. 게다가 좋은 디자인은 한옥의 범주를 넘어 생활디자인 제품으로 보편화할 가능성도 충분하다. 우리 고유의 전통문화에 산업의 옷을 입혀 문화 융성과 경제 발전에 기여하는 창조경제도 바로 이런 것이 아닐까.
 
장명희 한옥문화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