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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의 이름’ 다시 부르는 후지모리의 딸

입력 | 2016-04-12 03:00:00

페루 대선서 39% 득표 1위… 과반 못얻어 6월 5일 결선투표
선거前엔 “아버지 사면 않겠다”… 마지막 유세땐 “페루는 화해 원해”
국민들 후지모리 평가 극과 극… 언론 “결선, 아버지에 대한 투표”




아버지의 대통령 당선 이후 부모의 이혼으로 ‘고교생(당시 19세) 퍼스트레이디’에 오른 대통령의 장녀. 부정부패로 장기 복역 중인 아버지와 정치적 선을 긋고 차기 대통령 선거에 나서 득표율 1위에 오른 정치인.

수감 중인 알베르토 후지모리 전 페루 대통령(1990∼2000년 재임)의 딸인 게이코 후지모리(41)가 10일 치러진 페루 대선에서 득표율 1위에 올랐다. 11일 AP통신 등에 따르면 후지모리는 득표율 39%를 확보해 24%를 얻은 2위 페드로 파블로 쿠친스키(77)를 크게 앞섰다. 하지만 과반 득표자가 나오지 않아 페루 대선은 6월 5일 치러지는 1, 2위 후보 결선 투표에서 결정이 난다.

딸 후지모리가 대통령이 되면 페루의 첫 부녀(父女) 대통령이 탄생할 뿐만 아니라 인권침해와 횡령 등 독재정치로 25년 형을 받아 수감 생활을 하고 있는 후지모리 전 대통령에 대한 재평가 작업도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

딸 후지모리는 아버지 후지모리와 어머니 수사나 히구치의 장녀로 1975년 페루 수도 리마에서 태어났다. 아버지가 1990년 대통령에 당선돼 리마의 대통령궁에 들어가는 기쁨도 잠시. 부모가 1994년 이혼하는 아픔 속에서 당시 19세이던 후지모리는 졸지에 퍼스트레이디 역할을 맡게 된다. 히구치는 남편의 독재를 공개적으로 여러 차례 비난했으며 이를 둘러싼 갈등으로 이혼한 것으로 알려졌다.

어린 나이에 중책을 맡은 후지모리는 사회봉사 활동에 적극 나서며 대중의 우려를 호감으로 바꾸기 시작한다. 대표적으로 페루아동심장병재단을 설립해 벽지의 아픈 어린이들을 대도시로 옮겨 심장병 수술을 받게 하는 활동을 활발히 했다. 고교 졸업 후 미국으로 떠난 후지모리는 1997년 보스턴대에서 경영학학사, 2008년 컬럼비아대에서 경영학석사(MBA) 학위를 받았다.

아버지가 2000년 탄핵된 뒤 딸 후지모리는 2005년 귀국해 정치에 입문했고 이듬해 국회의원에 당선됐다. 역대 총선 사상 최고 득표율이었다. 아버지가 2010년 학살, 납치, 횡령 등으로 총 25년 형을 받은 이듬해 대권에 처음 도전했지만 결선 투표에서 48.6%를 득표하는 데 그쳐 현 오얀타 우말라 대통령(51.4%)에게 석패했다.

두 번의 대선을 통해 그녀는 아버지에 대한 입장을 바꿨다. 2011년에는 “아버지를 용서해야 한다”고 주장했지만 이번 대선을 앞두고는 “대통령이 돼도 아버지를 사면하지 않겠다”고 공언한 것이다. 하지만 1등이 확실시된 10일 밤 유세에서 “페루인들은 화해를 원하고, 싸움을 더이상 원하지 않는다”고 밝혀 여운을 남겼다.

현지 언론들은 6월 결선 투표가 “사실상 아버지 후지모리에 대한 투표”라고 보도했다. 아버지 후지모리에 대한 페루 국민들의 평가가 극과 극을 달려 선거는 혼전 양상을 띨 것으로 보인다. 고령자와 지방 유권자들은 경제 발전과 치안 확립을 이유로 아버지를 높게 평가하는 반면에 도시 중산층은 독재와 인권 침해를 들어 격렬히 반대하고 있다. 경쟁자인 쿠친스키 전 재정장관은 “부패가 만연하고 가혹한 인권침해가 벌어졌던 시절로 돌아가서는 안 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후지모리가 2011년 대선 때보다 진일보한 인권정책을 들고나왔지만 여전히 의심하는 이들이 많다고 보도했다. WSJ는 “후지모리는 ‘국가가 인권침해 피해자에게 보상해야 한다’고 발언하는 등 2011년 낙선 당시보다 적극적인 인권정책을 표방하고 있다. 하지만 사람들을 설득하기에는 역부족이며 여전히 많은 사람이 독재 반대 시위에 나서고 있다”고 전했다.

황인찬 기자 hic@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