高大주변서 31년간 하숙집 최필금씨 지금까지 2500여명 거쳐가
2010년부터 2억5000만원 기부 “예전엔 부대끼며 가족처럼 지내… 요즘은 원룸형 많아져 아쉬워요”

고려대 인근에서 31년 동안 하숙집을 운영해 온 최필금 씨가 고려대 농구부 주장이었던 오리온 이승현 선수의 유니폼을 들고 환하게 웃고 있다. 김재희 기자 jetti@donga.com
이달 초 만난 최 씨는 하숙을 처음 시작한 곳으로 기자를 안내했다. 화장실 유리문에는 누렇게 바랜 신문지가 붙어 있었다. 당시 중학교 2학년이던 최 씨의 딸이 “오빠들에게 씻는 모습이 비치는 게 남사스럽다”며 붙인 것이라고 했다. 최 씨는 오래돼 너덜거리는 테이프 한쪽을 손으로 꾹 눌러 붙였다.
최 씨는 자신의 하숙집을 거쳐 간 학생이 어림잡아 2500명은 될 거라고 했다. 하숙을 쳐 두 자녀를 키워낸 최 씨는 학생들에게 받은 도움에 보답하는 뜻으로 2010년부터 고려대에 장학금을 기부하고 있다. 지금까지 기부금액은 2억5000만 원을 넘었다.
31년 전 하숙을 시작했던 낡은 공간에는 현재 중국인 유학생 한 명만 살고 있다. 사생활을 중시하는 요즘 학생들은 원룸형 하숙을 선호하기 때문이다. 최 씨는 전처럼 학생들과 자주 만나지 못해 아쉽다고 했다. 그래서 하루 두 번 학생들과 정을 나눌 수 있는 식사 준비에 더욱 공을 들인다고 했다.
학생들은 그런 최 씨에게 각자의 방식대로 고마움을 전달했다. 고려대 농구부 주장이었던 이승현 씨(24)는 2014년 ‘고연전’에서 승리한 뒤 4년 동안 아침밥을 챙겨준 최 씨에게 자신의 유니폼을 선물했다. 이 씨의 자필 사인이 담긴 유니폼은 하숙집 식당에 보물처럼 걸려 있다. 그 옆에는 한 하숙생이 남긴 편지가 액자에 보관돼 있었다. ‘7년 가까이 아주머니 밑에서 밥을 먹은 또 하나의 아들의 도리로 당연히 드려야 할 글’로 시작한 편지는 A4 용지를 가득 채웠다.
좋은 추억만 있을 줄 알았던 최 씨에게도 잊을 수 없는 상처가 있었다. 3년 전 하숙집에 불이 나 한 여학생이 목숨을 잃었다. “지금도 제 잘못인 것 같아 마음이 떨려요.” 최 씨는 말끝을 흐렸다.
하숙생들의 저녁식사가 시작되는 오후 5시. 최 씨는 서둘러 하숙집 1층 식당으로 내려갔다. 메뉴는 닭백숙이었다. 구수한 냄새가 식당을 가득 채웠다. 최 씨는 학생들에게 큼직한 닭다리를 골라 퍼주며 “부족하면 더 먹어”라는 말도 빼놓지 않았다. “학생들 밥을 퍼줄 때 가장 행복해요.” 오후 6시, 하숙생들이 몰려들자 최 씨의 손길은 더 바빠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