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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류인균 “두뇌는 캐도캐도 알 수 없는 미지의 탄광”

입력 | 2016-04-12 03:00:00

류인균 이화여대 뇌융합과학원장
“신비 푸는게 과학의 마지막 숙제… 인간 수준 AI? 100년은 걸릴 것”




류인균 이화여대 뇌융합과학연구원장이 인공지능 (AI)의 미래를 설명하고 있다. 박영대 기자 sannae@donga.com

“사실 제 머릿속에 숫자 ‘7’ 같은 단어 하나가 어떻게 기억되는지도 잘 모르겠어요.”

최근 서울 서대문구 이화여대 뇌융합과학연구원에서 만난 류인균 원장(52)은 인간 두뇌 연구의 수준을 묻자 겸연쩍게 웃으며 이렇게 대답했다. 2013년 4월 설립된 연구원에서 50여 명의 연구진을 이끄는 류 원장은 국내에서 손꼽히는 뇌 과학자다. 하지만 그는 인간 두뇌를 “미지의 탄광이고 그래서 과학의 마지막 숙제”라고 표현했다. ‘알파고’ 열풍으로 인공지능(AI)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지만 사실 인간지능에 대해서도 모르는 게 너무 많다는 것이다.

인간의 두뇌는 인체에서 차지하는 무게가 2%에 못 미치지만 에너지와 산소는 20%를 소비한다. 뉴런이라고 부르는 신경세포와 이 신경세포를 돕는 지원세포로 이뤄져 있다. 구조가 복잡할 것은 없다. 하지만 류 원장은 “영문학자도 술에 취하면 A에서 Z까지를 순서대로 읊지 못하는 것이 뇌의 신비”라고 했다.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A B C D E’가 두뇌 속에 순서대로 자리를 잡고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기억뿐만이 아니다. 예컨대 △호르몬 분비가 뉴런에 영향을 미치는지 △감정은 두뇌 전반을 어떻게 변화시키는지 △의식과 무의식 영역은 두뇌 안에서 어떻게 작용하는지 등에 대한 연구가 모두 아직 걸음마 단계다.

하지만 기초적인 연구마저도 사회적인 의미가 크다는 것은 두뇌 연구의 매력이다. 탈북자 두뇌를 통해 폭압에 가까운 정치·사회 체계가 인간 두뇌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알아보는 연구에는 해외에서도 연구비를 지원하며 큰 관심을 보이고 있다.

인간의 지능과 AI를 비교해보면 어떨까. 류 원장은 서울대 의대 입학 시절 얘기를 들려줬다. 공대에 간 친구들은 1982년에 “컴퓨터가 내과 처방을 할 수 있는 시대가 올 테니 외과를 전공하라”고 했지만 30년이 지나도록 그런 시대는 열리지 않았다는 것이다.

류 원장은 인간과 유사한 수준의 AI를 보려면 적어도 100년 이상이 걸릴 것으로 내다봤다. 자신의 경험 때문만이 아니다. 비행기는 새를 모방해 만들지 않았지만 AI만큼은 인간 두뇌의 원리를 흉내 낼 수밖에 없는데 그 원리를 어느 정도라도 알아내는 데 수십 년에서 100년에 이르는 시간이 필요해 보인다는 것이다.

과학 기술은 상상을 초월하는 속도로 발전하고 있는데 정말로 그렇게 긴 시간이 필요할까. 류 원장은 “다른 동물과 구분되는, 수만 년 혹은 그 이상에 걸친 진화의 결과가 바로 이 ‘두뇌’니까 순식간에 따라 잡는 게 쉽지는 않을 거예요”라고 말하며 웃었다.

김도형 기자 dod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