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너지 전쟁] ● 석유시대 가고 가스시대 온다? ● 전기와 열 동시 생산, 효율 극대화 ● 선진국에선 신재생에너지 대우, 국가 차원 지원 ● 국내에선 이중규제로 사업체 도산 위기
전 세계가 온실가스와 전쟁을 벌인다. / 동아일보
‘2015 국가 온실가스 인벤토리 보고서’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온실가스 총배출량은 2013년 기준 6억9450만t CO2eq로 전년 대비 1.5% 증가했다. 이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5위이고, 온실가스 의무감축국 중에서는 6위다. 에너지 분야 온실가스 배출량은 6억620만t CO2eq로 총배출량의 87.3%를 차지했다.
2015년 11월 30일 프랑스 파리 르부르제 공항 컨벤션센터에서 열린 유엔 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1)에서 기조연설을 하는 박근혜 대통령. / 동아일보
“천연가스가 가장 합리적 대안”
그러나 원전이나 태양광, 풍력 등 신재생발전은 설비 확대 한계, 안전성 문제 등으로 확대가 쉽지 않다. ‘폴크스바겐 배출가스 조작 파문’에서 결정적 역할을 한 캘리포니아 환경보호청(EPA) 소속 데이비드 클레건 기후변화프로그램 공공정보 담당관은 지난해 동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바람, 물, 태양열 등을 동력으로 이용하는 신재생에너지는 자연환경에 영향을 받는다는 한계가 있다”며 “탄소배출을 줄이려면 지금으로선 천연가스가 가장 합리적인 대안”이라고 강조하기도 했다.
전문가들은 장기적인 관점에서 온실가스 배출 감소 효과와 에너지 효율성을 모두 충족하는 집단에너지 시설인 열병합발전(CHP․Combined Heat and Power)의 효용성이 커질 것으로 전망한다.
CHP는 집단에너지시설로서 하나의 에너지원으로부터 전력과 열을 동시에 생산하는 종합에너지 시스템이다. 발전 시 발생하는 배열을 회수해 이용하므로 에너지의 종합 열 이용 효율을 높일 수 있는 장점이 있다. CHP는 산업체, 주거용 건축물 등의 전력 및 열원으로 주목받는다. 일반 화력발전소의 발전효율은 약 40%. 송전 손실을 고려하면 이용효율은 35% 정도지만 CHP는 발전 시 배열이 발전량보다 1.5~2배 발생하고 이를 유효에너지로 회수해 사용하므로 총 효율이 75~90%까지 향상된다.
CHP를 통한 집단에너지시설은 다른 연료보다 CO2 배출이 적은 LNG, 폐기물 고형 연료(SRF) 등 신재생에너지를 활용해 열과 전기를 생산하기에 환경개선 효과가 높다. 정부에 따르면 개별공급방식과 비교했을 때 집단에너지 공급에 따른 2014~18년 지역 난방부문에서 오염물질 배출은 49.2%, CO2 발생은 23% 절감할 수 있고, 산업단지 부문에서도 각각 23.9%, 18.6% 줄일 수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CHP의 장점은 수요지 인근에 세워지는 분산형 전원이라는 점이다. 이 덕에 장거리 송전망 건설에 드는 비용이 들지 않고, 송전선로가 지나가거나 송전탑이 세워지는 지역 주민의 피해 보상 등 사회적 비용을 낮출 수 있다.
전 세계가 온실가스와 전쟁을 벌인다. / 동아일보
장거리 송전망 건설은 1km 건설에 약 120억 원(345kV, 지중송전 설계 기준)이 투입되는 고비용 사업이다. 한전은 2014년 송변전(送變電) 설비 건설 등에 약 2조1600억 원을 들였다. 올해부터 3년간 약 8조1200억 원을 추가 투입하기로 했다. 송전망은 통상 10km 건설에 최소 1년 이상 소요된다. 실제로 신안성~신가평 80km 구간 송전선 건설은 1995년 건설 계획 수립 이후 16년 2개월 만에 완공됐다. 신고리~북경남 90km 구간도 2000년 8월 설비계획이 확정된 지 14년 4개월만인 2014년 12월에야 완공됐다.
실제로 송전선로가 지나가거나 송전탑이 세워지는 지역에서는 크고 작은 마찰이 발생한다. 경상남도 밀양 지역 주민의 송전탑 반대 투쟁은 지난해 10주년을 맞았다. 2005년 12월 밀양시 상동면 여수마을 주민이 한전 밀양지사를 찾아가 송전탑 공사 중단을 요구하며 시위한 것이 투쟁의 시작이었다. 10년 동안 지역 주민 2명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고, 383명이 입건됐다. 현재 69기의 철탑이 완공돼 송전이 이뤄지나, 밀양 5개면 193세대 302명은 한전 측의 합의금 수령을 거부한 채 반대 투쟁을 접지 않았다.
유럽, 미국에 이어 중국까지 열병합 확대
CHP를 장려하는 대표적 국가는 독일이다. 독일은 에너지-기후통합 프로그램(IEKP)을 통해 1990년 대비 2020년까지 온실가스 감축 40%를 목표로 설정하고 재생에너지 사용 확대, 열병합발전량 확대 및 건축물의 에너지효율 개선을 정책 방향으로 삼았다.
1998년 4월 전력시장 자유화 이후 CHP가 경제성 악화로 감소 추세를 보이자 독일 정부는 2000년 4월 열병합발전법(KWKG)을 제정했다. 2020년까지 CHP에 의한 전력생산 비중을 지금보다 두 배 늘린 25%로 확대하는 목표를 설정(2009년)하고, 설치보조금과 발전량에 따른 운영지원금 제도를 운영한다. 연간 지원예산은 7억5000만 유로. 전기요금에 열병합 부담금을 부과해 소요재원을 조달한다.
전 세계가 온실가스와 전쟁을 벌인다. / 동아일보
영국은 2050년까지 온실가스 배출량을 1990년 대비 80% 감축하는 계획을 수립했다. 덴마크는 2020년까지 온실가스 배출량을 2005년 대비 15% 감축하는 계획을 세웠다. 벨기에는 2005년 대비 2020년 온실가스 배출량을 15% 감축하는 것을 목표로 CHP 활성화를 위한 다양한 지원정책을 편다. 연방정부 차원에서는 CHP 사업자에게 투자비의 14.5%(2013년 기준)에 대한 세금 감면 혜택을 제공하고, 지방정부는 CHP에 녹색인증서(Green Certificate)를 발급, 사실상 신재생에너지로 간주한다.
미국은 주 정부 정책으로 신재생에너지 공급 의무화(RPS), 에너지효율 향상 의무화제도(EERS), 대체에너지 공급의무할당제(AEPS) 등 3가지 에너지 포트폴리오 제도를 시행한다. 지난해 기준 20개 주에서 CHP를 RPS 제도로 인정해 지원하며, 18개 주에서는 CHP를 EERS 제도로 지원한다.
매사추세츠처럼 RPS와 AEPS를 모두 채택한 주도 있다. 열병합발전기를 청정에너지 자원으로 인정한 미시간 주는 ACEC(Advanced Cleaner Energy Credit)를 발급, 신재생에너지 자원에 발급하는 신재생공급인증서(REC)처럼 판매하거나 거래할 수 있도록 했다.
중국은 지역난방 확대에 힘입어 CHP 설비가 급격하게 증가했다. 에너지경제연구원이 발표한 ‘중국 지역난방 현황과 개혁 추진’ 보고서에 따르면 중국 내 지역난방 공급지역은 1990년에서 2013년까지 약 20배 증가했는데, 이 중 절반을 CHP로 공급한다. 2000년 30GW이던 열병합설비는 2010년 167GW로 전체 발전설비 중 23%를 차지할 정도로 늘어났다. 베이징 등 일부 도시는 2020년까지 50GW 규모의 가스 열병합설비를 더 지어 총용량을 200GW까지 확장하는 것이 목표다.
국내 CHP 사업자 70%가 적자
하지만 국내에서는 전망이 밝지 않다. CHP를 발전․에너지 업종으로 분류, 배출권거래제 대상이자 신재생에너지 공급 의무사업자로 간주해 사실상 이중규제를 하기 때문이다. 전기가 넘쳐나는 시대가 되면서 석탄과 원자력보다 발전단가가 높은 집단에너지 사업자는 대부분 적자를 면치 못할 뿐더러 향후 생존 가능성도 장담하기 어려운 실정이다.
지역난방용 열을 생산해 공급할 의무가 있는 열병합발전소는 난방용 열 생산을 하면서 동시에 전력도 생산한다. 그런데 이때 생산한 열은 공공요금 이상의 가격을 받을 수 없고, 전기는 발전원가와 전력도매단가(SMP) 중 더 낮은 가격으로 정산하도록 규정해놓아 원가 이상의 초과이익을 거둘 수 없다. 전력도매단가가 높을 때는 그나마 원가 수준의 정산을 받을 수 있다. 하지만 요즘처럼 전력수요 둔화, 전력공급 과잉으로 전력도매단가가 낮을 때는 원가도 회수하기 어렵다. 그럼에도 지역난방용 열을 생산할 의무가 있기에 발전소 가동률을 마음대로 조절할 수도 없다.
이런 사정 때문에 집단에너지 사업자는 발전할수록 손실을 본다. 2014년의 경우 35개 사 중 25개 사에서 당기손실이 발생했다. 전체 손실 규모는 803억 원에 달한다.
지난해는 34개 사 중 20여 개 사가 적자인 것으로 드러났다. 적자행진이 지속되면서 파산은 물론 사업권을 반납하겠다는 사업자가 속출한다. 일부 사업체는 시장에 매물로 나왔으나 인수자가 나타나지 않는다.
전 세계가 온실가스와 전쟁을 벌인다. / 동아일보
지난해 4월 대전열병합이 맥쿼리에 매각된 것을 마지막으로 집단에너지 인수계약은 전무하다. 인천공항에너지는 한국지역난방공사가 인수를 고려하는 것으로 알려졌으나 2000억 원을 웃도는 부채 탕감을 인수 조건으로 내건 것으로 알려져 성사가 불투명하다. 비슷한 시기 매물로 나온 한진중공업 계열 집단에너지 계열사인 대륜발전ㆍ별내에너지 등은 인수자를 찾지 못해 구조조정 등 자구계획안을 도출하는 방향으로 선회했다.
우충식 집단에너지협회 사무처장은 “정부가 세계적 흐름과 달리 석탄 발전과 원전을 가동하면서 집단에너지 사업이 고사 위기에 처했다”고 말했다.
“전력시장이 굉장히 왜곡됐습니다. 국내 CHP 사업자들은 열과 전기를 함께 생산하는데, 전기만 생산하는 사업자와 시장에서 경쟁하는 건 무리예요. 열 요금은 제한하고 전기 요금은 시장에서 알아서 받으라고 하면 발전단가가 높아 다른 사업자와의 경쟁에서 당해낼 재간이 없습니다. 돈벼락을 바라는 게 아니에요. 최소한 투자보수율은 받게 해줘야 한다고 봅니다. 시장 경쟁이라는 이유로 정부가 손을 놓다가 집단에너지 사업자가 망하면 지역난방이 끊기고 그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에게 돌아갑니다.”
‘이 법은 집단에너지 공급을 확대하고, 집단에너지 사업을 합리적으로 운영하며, 집단에너지 시설의 설치·운용 및 안전에 관한 사항을 정함으로써 「기후변화에 관한 국제연합 기본협약」에 능동적으로 대응하고 에너지 절약과 국민 생활의 편익증진에 이바지함을 목적으로 한다.’ 집단에너지사업법 제1조 내용이다. 한 집단에너지 사업자는 “집단에너지 사업은 기후 변화에 대응하려는 정책 전원인데, 석탄 화력과 똑같은 발전량과 배출량을 할당하고 동일한 규제를 적용해 발전을 할수록 손해를 본다”며 “사업자들이 원하는 건 하나다. 최소한 원가만이라도 보상해 달라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기후협약에 능동적으로 대처하려 도입한 정책 전원인데 발전기니 탄소배출권거래제를 따르라 하니 살 수가 없어요. 집단에너지 사업의 온실가스 감축 기여도는 생각하지 않는 거죠. 한 업체는 신재생에너지 의무 할당까지 받았습니다. 외국에서는 CHP를 신재생에너지로 대우하며 전폭적으로 지원하는데, 우리나라는 거꾸로 가요.”
업계 관계자들은 “집단에너지 사업자의 줄도산으로 지역난방이 중단되는 최악의 상황은 막아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한 관계자는 “100MW 이상의 CHP 시설은 현행 도시가스사업법 제2조 및 같은 법 시행규칙 제2조에 따라 가스 도매사업자로부터 가스를 공급받게 돼 있다. 그러나 100MW 이하의 CHP 시설은 일반도시가스사업자로부터 가스를 공급받아야 하므로 발전 단가에서부터 차이가 발생한다”며 “생산 원가에도 못 미치는 열을 생산, 판매해야 하니 경영이 어렵다”고 답답해했다. 또 다른 집단에너지 사업자는 “분산전원인 집단에너지는 에너지 효율과 온실가스 감축 효과를 동시에 내기에 국내 전력수급의 현실적 대안이 될 수 있다. 집단에너지 사업자들의 경영난이 연쇄 파산, 지역난방 공급 중단 등의 사태로 번지지 않도록 사업경제성과 공급 안정성을 높일 수 있는 기반이 강화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세계적인 흐름은 온실가스 감축이라는 큰 목표를 향해 나아간다. 신기후체제(Post-2020․ 2020년 이후부터 선진국과 개발도상국 모두 감축의무를 부담하는 기후변화협약) 출범으로 우리나라를 향한 온실가스 감축 요구는 더욱 거세진다. 전문가들은 장기적으로 국내에서도 CHP의 비중을 늘려야 한다고 전망한다. 다만 선결과제가 있다. 환경적 가치에 대한 공감대 형성이다.
유승훈 서울과학기술대 에너지정책학과 교수는 “정부에서 열 요금을 규제하는 것도 문제지만, 전력 수요가 안정되면서 전기 판매량이 줄어 전기 요금 수익이 악화돼 전기를 팔아도 손해 보는 구조가 되며 사업자들의 어려움이 커졌다”고 진단했다. 유 교수는 또 “해외에서는 온실가스 배출량을 줄이고 에너지도 적게 쓰기에 CHP에 세금 감면 혜택 또는 신재생에너지에 버금가는 대우를 해준다. 그러나 국내에서는 석탄 화력과 비슷한 대접을 받는다. 최소한 원가 수준으로 전기를 사줘야 업체들이 살아남을 수 있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천연가스의 효율적 활용
최병렬 에너지경제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천연가스는 연소하면 1600~1700℃까지 올라가는 에너지로, 터빈을 두 번 돌릴 수 있는 고급 연료다. 국내에서는 천연가스를 전량 수입해 쓰는데, 기왕 외화를 들여 도입한 연료라면 효율적으로 활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유럽과 미국 등 CHP를 지원하는 선진국이 우리와 다른 점은 환경에 대한 가치를 중시하는 분위기가 조성됐다는 점입니다. 그를 기반으로 CHP에 관한 지침을 만들고 강한 드라이브를 거는데, 국내에서는 산업부와 환경부 간, 산업부 부서 간 의견 조율도 잘 안 됩니다. 무조건적 지원보다 환경에 대한 가치를 일깨우고, 사장되지 않을 올바른 정책을 만들어 지원해야 합니다.”
주무부처인 산업부 관계자는 “열 요금 관련 원가가 요금에 반영되지 않는 것에 대해 업계에서 꾸준히 애로사항으로 이야기해왔고, 이 때문에 지난해 고시 개정이 이뤄졌다”고 설명했다. 그에 따르면 집단에너지사업법 제17조 및 같은 법 시행령 제12조에 따른 ‘지역난방 열 요금 산정기준 및 상한지정’ 일부가 개정됐다. 올해부터 적용되는 상황을 지켜보고 추가로 보완책을 마련하겠다는 것이 산업부 방침이다. 이 관계자는 전력 요금에 대해 “지난해부터 온실가스 감축과 신산업 창출의 플랫폼 구실을 할 수 있도록 분산 전원 활성화 방안을 논의하고 규칙 개정을 추진 중”이라고 밝혔다.
100년. 석탄이 목재를 대체하는 데 걸린 시간이자, 석유 사용량이 석탄보다 늘어나는 데 걸린 시간이다. 한 세기를 대표한 석유를 대체할 에너지는 무엇일까.
오일 시대의 종말은 생각보다 이를 수 있다. 원전은 위험하고 풍력․태양광은 제약조건이 많다. 그렇다면 천연가스가 유력한 대체재일까. 속단할 수는 없다. 분명한 것은, 앞으로 펼쳐질 세기의 에너지 전쟁에서 살아남으려면, 혹은 주도권을 잡으려면 합리적 정책 수립이 선행돼야 한다는 점이다.
구희언 기자 hawkey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