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관총 금관(金冠塚金冠)
천년 세월을 도도히 지켰네
해 뜨는 나라 사로국에서
미증마립간 4년 신라에서 또 신라로
삼세번 출出 하라는 황금의 말씀
허공의 정수리에 깊이 새겼으니
성공한 왕조의 고단한 상징이여
역사는 광풍이었고 승리였고 끝없는 패배였네
또한 영광이었고 덧없음이었으니
나 오늘 지밀에서 새어나오는
지존하신 분의 한숨소리를 들어야 하는가
바람을 달래고 땅을 잠재워
어진 백성의 밥상머리를 어루만졌던
만파식적, 피어린 피리소리를 듣는가
저 뿔 하나로 천년을 증거해야 한다면
차라리 침묵하라는 순금의 봉인인 듯
솔거의 붓길이
백결의 정신이 이차돈의 순교가 빚은
비취색 옥구슬과 금사슬이 차라리 소박하다
위엄과 권능을 거느리고
그러나 한없이 외롭고 높고 쓸쓸한
영원한 성소여
꽃 만발이다. 거리마다 산골짝마다 꽃 아닌 빨주노초파남보 저고리를 입은 사람들이, 깃발들이 저마다 왕이 되는 잔치마당에서 춤을 추고 있다. 헌법에 ‘대한민국의 모든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고 했으니 오늘 국회의원 선거 날은 국민이 왕이 되는 날이다.
임금을 만인지상으로 받들던 때도 ‘백성은 하늘이라’ 했으니 백성의 뜻을 거스른다면 어찌 진정한 왕의 자리에 오를 수 있으랴.
이토록 찬란무비의 황금 모자를 쓰셨던 나라님은 바다와 대륙에서 발톱을 세워 달려드는 오랑캐들을 물리치고 백성들을 고르게 배불리고 사는 일에 얼마나 노심초사하였을까. 시인은 역사의 고단한 영광을 짚으며 ‘만파식적, 피어린 피리소리를 듣는가’라며 왕관을 쓰지 못하는 백성들의 살림살이를 걱정하고 있다.
이근배 시인·신성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