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습기 살균제 사망 논란 일자… 기존법인 청산 ‘공소기각’ 노린듯 자사 직원 아파트서 유해성 측정… 동물 독성 실험도 농도 낮춰 ‘편법’
‘가습기 살균제 사망 사건’으로 검찰 수사를 받고 있는 살균제 제조판매업체 옥시레킷벤키저가 법적 책임을 피하기 위해 기존 법인을 청산하고 새 법인을 설립한 정황이 드러났다.
서울중앙지검 특별수사팀(팀장 이철희 형사2부장)은 옥시 관계자를 조만간 소환해 법인 고의 청산 여부 등을 집중 조사할 방침이다. 검찰 등에 따르면 옥시는 2011년 12월 회사 형태를 주식회사에서 유한회사로 변경했다. 이 절차를 통해 옥시 측은 가습기 살균제를 제조 판매해 온 기존 법인을 해산했으며 주주·사원, 재산, 상호를 이어받은 새로운 법인을 설립했다. 2011년 12월은 정부가 가습기 살균제와 폐 손상 사이에 인과관계가 있다는 실험 결과를 발표한 직후로 진상 규명 여론이 거세던 때였다.
검찰은 옥시 측이 형사처벌을 피하기 위해 이런 꼼수를 부린 것으로 보고 있다. 형사소송법은 피고인인 법인이 존속하지 않으면 공소 기각을 결정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피고인이 사망하면 ‘공소권 없음’ 처분을 하는 것과 같은 차원이다. 앞으로 검찰이 옥시의 혐의를 규명한다고 해도 옥시의 새 법인을 기소하지 못할 수 있다.
한편 옥시 측이 ‘짜맞추기 실험 결과’를 연구진에 주문한 정황도 속속 드러나고 있다. 가습기 살균제와 폐 손상 사이에 인과관계가 없다는 결과 보고서를 낸 호서대 실험팀이 가습기 살균제로 인한 공기 중 위험 농도를 측정하는 실험에서 옥시 직원이 사는 아파트를 실험 장소로 이용한 것으로 전해졌다. 또 옥시 측은 동물 흡입 독성 실험을 서울대팀에 맡기면서 ‘가습기 살균제 최대 노출치를 권장 사용량의 4배로 한정하라’고 주문한 것으로 알려졌다. 동물을 이용하는 통상적인 독성 실험은 권장 사용량의 10배까지 노출하라고 설정한다.
김준일 기자 jiki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