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트맨(왼쪽)과 슈퍼맨. 영화 속 두 영웅은 서로가 ‘친구’인지 ‘적’인지 헷갈려하며 갈등한다.
배트맨은 슈퍼맨이 영 아니꼽다. 인간도 아닌 외계인 주제에 구원자 행세를 하고 있어서다. 사실, 슈퍼맨은 지구를 지키기보단 파괴하는 존재다. 같은 외계인인 조드 장군에 맞서 눈에서 광선을 뿜어내며 싸우는 과정에서 빌딩이 무너지고 수많은 인간이 희생되지 않았느냔 말이다. 그럼에도 슈퍼맨은 외계인이라는 초월적 존재이기에 어떤 도덕적 비난도 받지 않은 채 신과 같은 존재로 추앙받는다.
배트맨은 박사 수료 이상인 자만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은 무지하게 어려운 말로 슈퍼맨의 존재적 문제점을 정의한다. “슈퍼맨의 가장 큰 문제는 인간이 더 이상 특별한 존재가 아니란 사실을 각인시켜 주는 데 있다. 슈퍼맨 앞에서 인간은 한낱 우주 생명체 중 하나에 불과해지니까….” 자신에게 의지함이 없이는 인간 스스로는 어떤 일도 해결하지 못하게끔 만듦으로써 인간의 존재 가치와 자유 의지를 추락시키는 암적 존재가 슈퍼맨이란 주장이다.
어떤가. 배트맨과 슈퍼맨, 누구의 주장이 더욱 그럴싸하게 보이는지?
양자택일하기에 앞서 일단 놀라운 사실은 이 영화 속에서 갈등하고 다투고 대결하는 슈퍼맨과 배트맨은 더불어민주당의 김종인 비상대책위원회 대표와 문재인 전 대표를 각각 쏙 빼닮아 있는 것 같다는 점이다. ‘지구인도 아닌 외계인이 영웅 행세를 한다’는 배트맨의 불만은 홀연히 더민주당으로 들어와 대표 자리에 앉아 난세의 해결사로 떠오른 김종인을 바라보는 문재인의 복잡한 심경은 아닐까? 굴러온 돌(슈퍼맨 혹은 김종인)이 박힌 돌(배트맨 혹은 문재인)을 빼내려 한다는 의심의 형국이 아닌가 말이다.
반대로 배트맨을 흘겨보는 슈퍼맨의 마음은 문재인을 향한 김종인의 시각과 크게 다르지 않을 듯하다. 사심도 없고 깨끗한 외부인인 내가 마른하늘에 빛처럼 나타나 침몰해 가는 당을 구원해 주려 하거늘, 어두운 패권주의로 얼룩진 친노 세력이 도대체 무슨 도덕성과 정당성을 기반으로 나를 ‘바지사장’ 취급하느냐는 불만이 아닐까.
오, 게다가 배트‘맨’과 슈퍼‘맨’처럼 문재‘인’과 김종‘인’도 이름의 끝 글자가 똑같지 않은가! 이런 무시무시한 평행이론이? 배트맨과 슈퍼맨이 처음에는 서로 나쁘지 않은 사이였지만 점차 ‘친구’인지 ‘적’인지 헷갈려한다는 점도 문재인과 김종인의 관계를 절묘하게 포개 놓은 것만 같다. ‘서로 적인 듯하지만 적이 아닐 수도 있다’는 의미에서 이 영화의 영어 제목(Batman v Superman: Dawn of Justice) 중 ‘대(對)’를 뜻하는 영어를 ‘vs’가 아닌 ‘v’로 어중간하게 표기해 놓은 것이리라.
그렇다. 정의를 표방하든 평화를 외치든, 세상 모든 힘의 본질은 다르지 않은 것 같다. 힘은 그 자체로도 결코 순수하지 않다. 나 같은 힘을 가진 또 다른 존재를 용납할 수 없는 것이 힘의 태생적 본질이기 때문이다. 하늘 아래 태양도 오직 하나, 영웅도 오직 하나, 구원자도 오직 하나, 아내도 오직 하나여야만 하는 것이다. 아, 지구나 지키면 될 일인 배트맨과 슈퍼맨이 쓸데없고 소모적인 싸움질을 벌인 게 고작 존재증명 때문이었다니. 부끄러운 줄 알아라, 슈퍼영웅들아!
이승재 기자 sjd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