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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룸/유성열]정치에 매몰된 최저임금

입력 | 2016-04-14 03:00:00


유성열 정책사회부 기자

“마음 같아서는 매년 두 자릿수(퍼센트)로 올리고 싶지만….”

이기권 고용노동부 장관은 평소 최저임금 관련 질문을 받으면 “중소기업과 영세 자영업자의 피해를 최소화해야 한다”며 이렇게 토로한다. 올해는 이 장관의 머릿속이 더 복잡해졌다. 갈수록 뜨거워지는 최저임금 논란에 정치권까지 가세했기 때문이다.

새누리당은 현재 6030원(시급)인 최저임금을 2020년까지 8000원 이상으로 올리고, 근로장려세제(빈곤층 근로자에 대한 현금 지원)를 확대해 9000원까지 체감 효과를 내겠다고 약속했다. 더불어민주당은 2020년까지, 정의당은 2019년까지 1만 원으로 올려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새누리당은 매년 8%, 더민주당은 매년 14%, 정의당은 매년 18% 이상을 인상해야 공약 달성이 가능하다.

최저임금 인상은 세계적인 ‘대세’다. 미국의 뉴욕과 캘리포니아 주정부는 최저임금을 시급 15달러(약 1만7000원)로 올렸고, 영국은 이달 1일부터 25세 이상 근로자의 최저임금을 7.2파운드(약 1만1700원)로 정했다. 영국은 최근 3년간 전체 인상액에 버금가는 금액을 한 번에 올렸지만 5년 내에 9파운드(약 1만4700원)까지 더 높일 계획이다. 일본도 시급 1000엔(약 1만600원)을 목표로 올해부터 매년 3%씩 인상해 나가기로 했다. 이쯤 하면 우리도 이런 대세에 적극 동참해 최저임금을 대폭 인상해야 할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여야가 간과한 게 있다. 영세 자영업자와 중소기업이다. 최저임금 근로자 대부분을 이들이 고용하고 있기 때문에 최저임금 인상 시 가장 큰 피해를 본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따르면 한국의 자영업자 비율은 28.2%로 터키(37.1%), 그리스(36.8%), 멕시코(33.7%)에 이어 4위지만 영국은 14.6%, 일본은 11.8%, 미국은 6.8%에 불과하다. 영국 미국 일본은 최저임금을 대폭 인상해도 피해가 적지만 한국은 피해를 보는 계층이 많다는 얘기다. 더구나 한국의 자영업자와 중소기업은 내수 경기 침체와 대기업의 ‘갑질’로 이미 벼랑 끝에 몰려 있다. 최저임금까지 대폭 인상되면 문을 닫는 곳이 늘어날 수도 있다.

최저임금은 노동계 9명, 경영계 9명, 공익위원 9명으로 구성된 위원회에서 토론과 협상을 거쳐 결정한다. 토론과 협상은 경제성장률과 물가상승률, 소득 격차 등 ‘팩트’에 근거해 진행돼야 한다. 하지만 올해는 여야의 공약이 최저임금위를 향한 ‘외압’이 되고 말았다. 객관적 근거에 바탕을 둔 토론과 협상으로 결정돼야 할 최저임금이 정치에 매몰될 가능성이 높아진 것이다.

그러고 보니 정치권이 간과한 게 또 있다. 올해 최저임금 수혜 대상 근로자는 342만 명. 이 가운데 약 200만 명은 여전히 최저임금 이하의 임금을 받는다. 최저임금 인상 못지않게, 최저임금을 제대로 받게 하는 것도 중요하다. 최저임금 협상에 개입하는 것보다 법이 보장한 최저임금을 제대로 받게 하는 것. 정치권은 이 부분에도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유성열 정책사회부 기자 ryu@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