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레이그 톰슨 ‘만화가의 여행’
모든 것이 비정상적으로 아름답고 완벽했다. 뻔한 표현이지만 정말로 구름 한 점 없는 하늘, 에메랄드빛 바다였다. 생애 처음 한 스노클링도 멋졌고 사람들도 친절했고 심지어 음식도 맛있었다. 가끔 나오는 도마뱀이 유일한 위협 요소였는데 크기도 작고 나보다 훨씬 겁이 많아 그다지 무서워할 틈도 없었다. 그런데 나는 부끄럽게도 그 완벽함 속에서 불안을 느꼈다.
불안은 점점 커졌다. 저렇게 하늘이 계속 컴퓨터그래픽처럼 아름다울 리가, 이렇게 세상이 계속 조용할 리가, 이렇게 계속 놀아도 될 리가 없는데…. 균형감이 이상해지는 기분이었다. 만약 이 완벽함이 무언가의 전조라면? 갑자기 태풍이 온다면? 내 옆에서 밥을 먹는 저 손님이 사실 살인마라면?(마지막은 너무 나간 것을 나도 인정한다.) 그러다 일행이 몸살이 났다. 섬의 매점에서 잘 듣지도 않는 진통제를 계속 사면서 내 불안은 극에 달했다.
만화 ‘담요’로 성공을 거둔 크레이그 톰슨은 유럽으로 출판기념회 겸 여행을 떠난다. 모로코에도 간다. 하지만 톰슨은 이 책에서 괴로움을 겪는 것으로 묘사된다. 사랑하던 여인과 헤어졌는데 그녀에 대한 집착은 사라지지 않고 모로코 아이들은 아무리 그림을 그려줘도 그의 주머니를 벗겨 먹으려고만 한다. 사인회는 계속 이어지고 직업병인 건초염은 점점 더 심해진다. 그리고 이어지는 죄책감. ‘사실 나는 진짜 세상의 고통은 알지 못한 채, 이유도 모를 허무에 빠져 있는지도 몰라.’
그의 우울은 한 여성을 만나고 단숨에 해결된다. 더는 구석에서 풍경과 고양이를 그리지 않고 관능적인 그녀만을 그린다. 펜 선에 얼마나 힘이 넘치는지 모른다. 이렇게 간단히 인생이 충만해지다니. 그리고 결국 아무것도 해결되지 않다니. 예민한 사람이 자기 반성적이고 솔직하면 본인은 괴롭고 지켜보는 사람은 즐겁다. 그런 의미에서 참 어둡고 즐거운 책이다.
오지은·가수